‘신세계’ 감독 박훈정 “정치하는 깡패들 통해 권력이 뭔지 묻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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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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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만 관객 동원한 영화 ‘신세계’

박훈정 감독은 “카메라 뒤에만 서 봐서 인터뷰보다 사진 찍는 게 어렵다”고 했다. “작품의 분위기와는 달리 활짝 웃어 보라”고 했더니 딴소리를 했다. “날씨가 왜 이리 추워.”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박훈정 감독은 “카메라 뒤에만 서 봐서 인터뷰보다 사진 찍는 게 어렵다”고 했다. “작품의 분위기와는 달리 활짝 웃어 보라”고 했더니 딴소리를 했다. “날씨가 왜 이리 추워.”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예상이 빗나갔다. 거칠고 두툼한 손이 아닌, 여자 같은 손을 내밀었다. 부드러운 미소에 옅은 미성(美聲)이 반겼다. 수줍은 듯 조용조용 얘기하는 모습이 다소곳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영화 ‘신세계’를 연출한 감독이 맞나 싶었다. 그는 ‘부당거래’, ‘악마를 보았다’ 같은 피와 살이 튀는 작품으로 충무로를 사로잡은 시나리오 작가다.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카페에서 만난 박훈정 감독(39)이다.

수컷들이 뿜어내는 담배 연기, 엘리베이터 신에서 봤던 회칼의 비릿한 쇠 냄새가 또렷하게 기억되는 ‘신세계’. 이 거친 영화를 400만 명이 넘게 봤다. 하지만 감독은 성에 안 차는 눈치다.

“속편을 만들려면 아무래도 이번 영화에 관객이 많이 들어야죠. ‘대부’ 같은 에픽 누아르(서사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범죄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신세계’는 박 감독이 만들려는 시리즈의 2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프리퀄(앞선 이야기를 담은 속편)인 정청(황정민)과 자성(이정재)의 젊은 시절 전남 여수 이야기가 1편이고, 조직폭력배가 만든 골드문 그룹을 차지한 인물의 이야기가 3편이다.

“속편은 제가 연출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여수 이야기는 (이번 영화보다) 다이내믹하고 액션 장면도 많아요. 구력이 있는 선배 감독이 하셨으면 합니다.” 박 감독은 이미 세 편의 이야기를 거의 완성했다고 한다.

벌써 속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만큼 영화가 호평을 받지만 시작은 초라했다. “투자하려는 측이 두 가지를 요구했어요. ‘시나리오와 배우들은 좋은데 감독과 장르를 바꿔라’, ‘누아르는 흥행이 안 되니 제작비도 깎자’고 했죠.” 그의 감독 데뷔작인 ‘혈투’(2011년)는 흥행에 참패했다.

힘을 실어 준 것은 배우들이었다. “언제 또 이런 배우들의 조합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며 박 감독과 영화를 꼭 함께 하겠다고 했다. “최민식이 가장 먼저 강 과장 역을 하겠다고 했어요. 정청 역은 최민식과 연기 대결을 벌일 수 있는 배우라야 했는데, 황정민밖에 없었어요. 그가 안 한다고 했으면 영화는 힘들었을 겁니다.”

관객은 황정민의 연기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조직폭력배의 무자비함과 친동생 같은 자성을 감싸는 인간미를 교직해 낸 그의 솜씨가 화제다. “황정민은 아이디어를 많이 냈어요. 맨발에 기내용 슬리퍼를 신고 공항 입국장을 나오는 것도 그의 제안이었죠.”

완성도는 높지만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 물었다.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동하는지, 그를 둘러싼 들끓는 욕망을 보여 줍니다. 깡패들이 넥타이 매고 정치하는 얘기를 통해 권력이 뭔지 묻는 영화죠.”

그는 “앞으로도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을 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 시나리오 전업 작가로 살 수 없었는지 말했다. “창작자에 대한 권리가 아무것도 없어요. 저는 제작사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어요. 제가 가질 수 있는 금전적인 권리 등을 세게 요구했거든요. 투자자, 제작사들이 작가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야 합니다.”

그는 대학을 두 곳 다녔다. 하지만 적성이 맞지 않아 두 번 모두 중퇴했다. 부사관(중사 제대)으로 군대에 말뚝을 박으려고도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나리오를 썼어요. 제가 할 줄 아는, 제일 잘하는 일이 글쓰기 같아요. 하지만 매일 자책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못 쓰지?”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신세계#박훈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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