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불량유전자와 공존했기에 인류는 진화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3일 03시 00분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강신익 지음/288쪽·1만3500원/페이퍼로드

아즈텍인들은 16세기까지도 팔딱거리는 사람들의 심장을 태양신에게 바치는 의식을 치렀다. 인간 생명의 근원이 심장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명 진화의 근원을 탐구하는 노력은 현대과학에서 유전자학으로 발전했다. 페이퍼로드 제공
아즈텍인들은 16세기까지도 팔딱거리는 사람들의 심장을 태양신에게 바치는 의식을 치렀다. 인간 생명의 근원이 심장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명 진화의 근원을 탐구하는 노력은 현대과학에서 유전자학으로 발전했다. 페이퍼로드 제공
“허준을 드라마로 또 한다고?”

많이도 우려먹는다. 벌써 몇 번째인가. 물론 시대에 따라 시각이나 전개방식이야 달라지겠지. 하지만 이 정도면 ‘구암 허준’이 아니라 ‘사골 허준’이라 불러야겠다.

방송국 속내와는 별개로, 시청자들은 그래도 허준 드라마에 관심이 많다. 아니 허준이란 인물을 참 사랑한다. 왜냐? 고생하는 의사 분들에겐 미안하지만, 그만큼 현실에선 이런 명의를 만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허준은 단지 병 잘 고쳐서 존경받는 게 아니다. 환자를 정성으로 살피고, 백성을 애정으로 돌보는 그 마음이 선생을 명의로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솔직히 인제대 의학교수인 저자가 명의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면식도 없고, 국내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인문의학교실’도 들은 바 없다. 하지만 ‘몸의 역사’ ‘생명, 인간의 경계를 묻다’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등 많은 의학 및 과학 대중서적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적어도 책을 통해 일반인들이 의학과 친해질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는 뜻이다. 최소한 환자를 짐짝 취급하며 권위만 내세우는 (일부!) 의사들보단 훨씬 나아 보인다.

‘불량 유전자는…’은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몸을 인간의 시각으로 들여다보자는 주제의식이 담긴 책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우리는 가끔 과학에 매몰돼 인간을 너무 도식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책에서도 언급한 리처드 도킨스의 명저 ‘이기적 유전자’도 마찬가지다. “유전자가 이기적으로 자신을 복제하고, 신체는 그 유전자를 실어 나르는 그릇이다”라는 설명은 진화생물학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시각이다. 하지만 현상 이해에 치중하다 보니 너무 유전자 중심으로 시각이 고정된 게 안타깝다. 결국 의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인간의 신체를 더 깊이 파악하려면 “늙고 병들고 아파하면서 죽어가는” 사람의 일상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 제목인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도 이 같은 시각의 전환을 통해 던져보는 화두다. 유전자 입장에선 자신들이 불량인지 아닌지를 따질 가치 기준은 없다. 그저 유전자란 개체로서 살아남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선 그토록 오랫동안 진화가 이뤄졌는데 왜 아직도 우리를 괴롭히는 유전자가 존재하는지 의문스럽다. 자세한 설명은 책에서 이뤄지겠지만, 저자의 말처럼 생명이란 본질적으로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생명이다. 불량 유전자와 공존했기에 인류도 이만큼 진화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왠지 책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그다지 무게를 잡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인간의 생로병사나 의학과 관련된 역사를 되짚으며 우리가 유전학이나 생물학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를 친절하게 일러준다. 문장도 딱딱하지 않고 분위기도 편안하다.

다만 눈높이를 낮춰서 그런지 얘기를 하다가 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줄기세포처럼 논쟁적인 주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밀어붙였으면 어땠을까. 사례로 든 이야기들도 다른 의학 역사책 등에서 조금씩 접했던 내용인지라 살짝 신선도가 떨어졌다. 책 끝자락에 보면 의학자이자 철학자인 앨프리드 토버의 “과학은 사실과 가치의 관계가 변화하는 양상이다”라는 명언이 나온다. 책도 그런 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여 업그레이드될 수 있지 않을까. 독자로서 조심스레 증보판을 기대해본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허준#강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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