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 또만나/반또 현장]“만화가들 생계 걱정없는 그날 위해”…마조웍스는 달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3일 03시 00분


웹툰 캐릭터 유통 ‘마조웍스’ 창업한… 정철연-김선영 부부

성남=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성남=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우리 너무 거창하게 써주지 마세요. 아, 우리 너무 횡설수설하고 있어.”

20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마조웍스 사무실이자 그의 집에서 만난 정철연 작가(34)는 인터뷰 중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수줍은 성격 탓도 있었고, 실제로 마조웍스라는 회사가 굉장히 거창한 꿈을 품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갓 시작한 회사가 한국 만화생태계 자체를 바꾸겠다는 듯한 모습이 어쭙잖게 보일 거라 염려했던 게다.

부인인 김선영 마조웍스 대표는 반대였다. “정부가 우리 같은 회사를 지원해 주면 좋을 텐데…. 그렇게 써주실 수 있나요?”라는 식이었다. 정 작가가 그리는 웹툰 ‘마조 앤 새디’에서 두 사람이 각각 ‘마조’(마조히스트)와 ‘새디’(사디스트)라는 캐릭터로 설정된 게 실제 성격의 반영임을 저절로 확인하게 됐다(두 사람이 변태라는 얘기는 아니다, 물론).

포털이 새로 짠 만화시장의 문법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으로 종이가 아닌 ‘웹브라우저로 보는 만화’(웹툰)가 나타나면서 스노우캣(권윤주), 강풀(강도영), 성게군(정철연) 등 이른바 1세대 웹툰 작가들이 화려하게 등장했다. 정 작가가 스스로를 ‘성게군’이라는 캐릭터로, 부인 김 대표를 ‘성게양’으로 묘사한 웹툰 ‘마린블루스’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인형이나 휴대전화기 액세서리 등 관련 팬시상품도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정 작가는 이 만화로 대한민국 만화 대상과 대한민국 캐릭터 대상을 받았다.

웹툰의 가능성을 가장 빨리, 또 정확히 읽은 것은 포털 사이트였다. 잡지사와 출판사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은 포털은 만화 시장의 문법을 새로 짰다. 중심에 있는 포털이 웹툰 작가들과 계약을 맺고 유통을 담당하는 구조다. 이 구조는 포털이 웹툰 작가들에게 안정된 수익과 창작 공간을 제공하는 것으로도, 또는 반대로 포털이 웹툰 작가들을 단기 비정규직처럼 부리는 것으로도 보일 수 있다.

이 시장에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한 1세대 웹툰 작가는 강풀이었다. 스노우캣은 자기 개인 홈페이지를 떠나지 않으면서 주춤했다. 2세대 이후의 작가들은, 안철수 식으로 표현해 ‘네이버 동물원’과 ‘다음 동물원’에서 자랐다.

정 작가는 묘한 길을 걸었다. 그가 다니던 캐릭터 회사는 다른 기업에 인수됐고, 마린블루스는 시즌 2.5를 마지막으로 더 연재되지 않았다(인터뷰 중 정 작가는 “나는 지금도 마린블루스 시즌 3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몇 년 뒤 그는 포털이 아닌 기업(인텔코리아)의 페이스북(www.facebook.com/IntelKorea)에 새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화 ‘마조 앤 새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 만화 역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고, 그의 블로그(blog.naver.com/majosady)는 하루 3만∼5만 명이 방문한다. 그러자 이들 부부는 ‘마조웍스’라는 회사를 차린다고 발표했다.

마조는 마조웍스의 직원이 아니다

정철연 작가가 직접 그린 마조웍스 개념도
정철연 작가가 직접 그린 마조웍스 개념도
“웹툰 작가는 입사할 수 있는 기업이 네이버와 다음, 두 곳밖에 없는 취업준비생 같아요. 포털에서 연재 제안은 왔지만 저까지 그 길을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어요.”

정 작가는 인텔에서 만화를 연재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연재만화에는 기업홍보를 담지 않는다, 내용은 작가가 정하고 대신 인텔은 만화로 인한 모객효과를 누린다’는 조건이었다. 네이버와 다음 말고도 만화가가 수익을 낼 수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만화를 언제까지 그릴 수 있을까? 이게 모든 웹툰 작가들이 가진 걱정이에요. 포털 연재가 끊기면 다들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니까.”

마조웍스는 이들 부부가 다른 웹툰 작가들에게 ‘먹고살 걱정 좀 덜어보자’라고 말하고 싶어 지난해 자본금 3000만 원으로 세운 기업이다. 대략적인 개념은 이렇다. 광고 수익을 포함해 작품이 벌어들이는 돈은 고스란히 작가가 가져간다. 마조웍스는 그 작품을 분석하고 캐릭터 제품과 같은 2차 콘텐츠를 직접, 혹은 외부 기업과 연계해 생산·유통한다. 이 수익은 작가와 회사가 나눠 갖는다.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예를 찾기 힘든 ‘2차 콘텐츠 개발·유통 전문기업’이다.

이렇게 하면 만화 연재가 끝나도 캐릭터 상품이 꾸준히 팔리면서 작가에게 돈을 벌어다 준다. 작가는 마조웍스의 직원이 아니라 대등한 계약자 관계다. 마조(정 작가)도 마조웍스의 직원은 아니다. ‘노예 1호’라는 유머러스한 표현으로 불리긴 하지만. ‘노예 2호’인 우영석 작가(34)는 올해 상반기(1∼6월) 중에 마조웍스를 통해 작품을 발표할 예정이다. 김 대표의 꿈은 작가 108명(노예 1∼108호)과 계약을 하는 것이다.

“상업화?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이게 잘될까? ‘인기 있는 캐릭터 그림을 가방이나 필통에 찍 붙여놓을 뿐인’ 기존의 캐릭터상품과는 차원이 다른 제품을 내놓을 자신은 있었다. 작품을 이해하고 작가와 아이디어를 나누는 힘에 있어서 다른 어떤 기업보다 더 뛰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만든 제품을 살 소비자가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지난해 10월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열린 ‘마조 앤 새디 팝업 스토어(이벤트 상품전)’는 그런 우려를 말끔히 지웠다. 50m² 정도인 임시 매장에 하루 평균 1500명이 찾아왔다. 일주일 간 마조웍스가 자체 제작한 캐릭터 소품 1억600만 원어치가 팔렸다. 전국에서 온 팬들이 사인을 요청해 즉석 사인회가 10시간 동안 열렸다. 팬들은 정 작가가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도 따라갔다.

“자신감이 생겼어요. ‘사람들이 자기가 사랑하는 콘텐츠에 얼마든지 즐겁게 소비할 준비가 돼 있구나’ 하는. 국내 유통업체들은 이걸 여태까지 몰랐던 것 아닐까요.”

화장품·의류회사와 제휴 상품을 만들면서 일부 독자들로부터 ‘상업화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자 그는 1월 자기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우리 상품전이 대성공을 거두자 백화점들이 다른 웹툰도 찾고 있어요. 추천도 부탁해 오고요. 상업화,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이 글에는 22일 현재 댓글이 1671개 달렸다. ‘공감’ 버튼을 누른 이는 1572명이다.

성남=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마조웍스#정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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