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시인의 홋카이도.문.답]<7>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어떻게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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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5일 14시 05분


미소(된장) 라면의 발상지는 삿포로다. 라면을 좋아하니 안 먹어볼 수 없다.

스스키노 역 앞에 모여 있는 라면 골목으로 향해 아무 집이나 들러 가리비 된장 라면 하나를 시키고 기다리는데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게 되었다.

작게는 서너평 쯤 되는 홀을 가지고 있는 라면집들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는 골목이라 테이블이 따로 없고 주방과 연결된 ‘기역’자나 ‘디귿’자 테이블에서 먹는 일이 흔하기 때문에 옆에 누군가 앉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누군가는 오사카에서 출장 온 아저씨.
내가 여행을 온 이방인이라는 것을 알고 몇 마디 말을 붙이더니 삿포로에 출장 올 일이 일 년에 두 번 정도 있는데 그때마다 공항에서 달려와 찾는 집이 바로 이 라면집이라고 한다.

라면 천국인 나라에서 그것도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한 오사카에서 살면서 뭐가 다르냐고 물으니 ‘달라도 정말 다르다’는 말을 먼저 내뱉는다.

나는 먼저 나온 라면을 코 앞에 바싹 끌어다놓고 먹기 시작한다. 자, 집중과 음미. 그러자 그가 나에게 물었다.

“정말 다르지요?”

나는 그렇다는 의미로 끄덕끄덕하며 웃었다. 그의 아내가 출장을 가는 남편을 부러워하는 단 하나의 이유. 그것은 라면골목에 달려가서 삿포로 라면을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아내만 그런 게 아니라 장모님도 부러워하신답니다.”

나는 다시 큰 소리로 하하하 웃었다.

일본에서는 이처럼 진하고 맛있는 음식이 참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하게 낭만의 맛도 있었다.

이번엔 오타루의 한 스시(Isezushi)집에 들렀다. 미슐랭에서 별도 몇 개 받았다는 집이었다.
음식을 하는 장인의 손맛에 우리는 가끔 뒤로 넘어가지만, 정말이지 맛으로 치자면 “이런 법이 어디 있답니까?” 정도의 맛이라거나, “정말 이러시깁니까?” 정도에 해당하는 최상의 맛을 보여주는 스시집이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업을 얻고 있다는 스시 장인에게 물었다.

“스시라는 음식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잘 생각해서 대답해 주십사 부탁도 했다. 그는 스시에 전념을 다하면서도, 더듬지 않으면서 단칼에 대답했다.

“스시는 고급음식입니다.”

나는 웃지 않았다. 그 대신 그 진지함을 음미하기 위해 젓가락을 들어 스시를 집었다.
스시만 잘 만들면 된다. 무뚝뚝함은 별개의 문제, 만들고 있는 스시에만 섬세하면 그만이다. 별다른 치장과 기교는 필요치 않다는 생각으로 스시 먹는 일에 몰입했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절대적으로 착해진다. 그리고 두고 온 연인이나, 부모님 생각이 난다.

아, 맞다. 나에겐 언젠가 삿포로에서 무를 사서 먹던 기억이 있다.
언젠가 삿포로에 왔을 때 그것이 하도 좋아 보여 어쩌지를 못한 적이 있는데, 그 다음에 올 때는 ‘야채 껍질 벗기는 칼’을 준비해 왔고 나는 무 하나를 사서 숙소에서 과일처럼 깎아 먹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사께와 함께 말이다. 그 단맛과 그 무향과 그 씹히는 소리라니. 그 소꿉장난 같은 기억이 참 나에겐 소중하다.

이번 돌아오는 길에는 쌀을 사서 이곳이 그리울 때마다 밥을 지어야겠다. 홋카이도 쌀 중에 ‘유메피리카’ 라는 녀석을 사야겠지. <꿈, 이쁘다> 라는 이름의 쌀이라면 또 다른 재미난 소꿉장난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시인 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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