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실 한쪽에는 김환기의 유품으로 1970년대 미국 뉴욕의 아틀리에를 연출해 놓았다.화구 박스와 물감, 붓, 이젤, 작업복, 그리고 그가 아끼던 기타도 보인다. 환기미술관 제공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가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그는 전남 신안의 섬마을에서 태어나 도쿄, 부산, 서울, 파리, 뉴욕을 가로지르며 한국적 서정주의를 서구의 모더니즘에 접목한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정립했다.
김환기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삶과 예술 세계를 집약한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에서 6월 9일까지 열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전. 최초의 추상화 ‘집’을 비롯해 ‘론도’ ‘달밤의 섬’ ‘새벽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연작 등 유화, 드로잉, 오브제 70여 점을 선보인다. 아울러 그의 삶을 보여주는 사진과 기록, 유품도 전시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울·동경시대’ ‘파리시대’ ‘뉴욕시대’로 나뉘어 구성된 전시를 보고 나면 김환기의 전기 한 권을 읽은 듯 그의 일생에 푹 빠져들고 만다.
동아일보는 1935년 9월 6일자에 ‘청년화가 김환기 군 이과전(二科展·일본의 유명 미술전)에 초(初·첫)입선’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실어 한국 미술계에 그의 등장을 알렸다. 도쿄 니혼대 미술부에 유학하던 시절 그린 ‘종달새 노래할 때’로 얻은 영예였다.
1956년 그는 서울대와 홍익대 교수로 쌓은 지위를 내려놓고 돌연 현대미술의 중심지 파리로 건너가 한국적 아름다움을 서구의 추상기법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에 열중했다. 그가 선택한 주제는 고국의 자연, 보름달, 고향 바다와 하늘의 쪽빛 등이었다. 1950년대 후반 파리에서 그는 이렇게 밝혔다. “파리라는 국제 경기장에 나서니 우리 하늘이 더욱 역력히 보였고, 우리의 노래가 강력히 들려왔다. 우리들은 우리의 것을 들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 것이 아닌 그것은 틀림없이 모방 아니면 복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1963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한 직후 뉴욕에 정착해 점, 선, 면의 순수 조형요소로 가득 찬 대형 전면점화(全面點畵)를 이룩하기에 이른다. 전시관 3층에 이르면 김환기 예술의 정점을 이룩한 무한한 점들에 둘러싸여 환상을 만끽할 수 있다.
이번 기획전의 제목은 김환기와 절친했던 김광섭 시인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1970년 한국일보 주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환기의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5000∼7000원. 02-391-7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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