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내 인생의 맛]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 족발+샴페인 환상조합 제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8일 03시 00분


수제비에 전율한 ‘맛정보王’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서울 시내 곳곳의 맛집을 찾아다니는 게 취미다. 삼겹살, 족발, 삼계탕, 감자탕, 수제비, 칼국수 등 가리는 음식이 없을 정도다. 이 사장이 서울 중구 다동 음식점 거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서울 시내 곳곳의 맛집을 찾아다니는 게 취미다. 삼겹살, 족발, 삼계탕, 감자탕, 수제비, 칼국수 등 가리는 음식이 없을 정도다. 이 사장이 서울 중구 다동 음식점 거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59)은 한국 생활 30여 년 만에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사람’이 됐다. 요리가 취미였던 그는 젊은 시절 두 발로 한국 이곳저곳의 식당을 찾아다니며 한식의 맛에 눈을 떴다. 생선회나 세발낙지도 거리낌이 없다. 톡 쏘는 홍어찜도 잘 먹는다. 주말에 아내와는 곤드레밥 정식을 먹으러 다닌다. 풍문으로 듣거나, 언론을 통해 봤거나, 혹은 친구에게 소개받은 맛을 찾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닌다.

일반인에게도 널리 친숙한 그는 이제 한국의 먹을거리와 쉴거리를 세계 곳곳에 전파하는 한국관광공사의 선봉장이다. 그가 추천하고픈 한국의 맛과 정서는 뭘까. 좋아하는 음식과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묻자 그는 달변가로 변신했다.

푸른 눈 청년의 수제비 찬가

이 사장이 한국에 처음 온 건 1978년. 그는 혼자서 지도를 들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가장 충격적인 맛은 물냉면. 식당에서 다들 맛있게 먹고 있어서 따라 시켜본 음식이었다. 면이 들어있는 수프(soup)라면 뜨거워야 하는데 국물이 차가웠다.

“주인이 외국 손님 왔다고 속인 줄 알았어요. 결국 하나도 못 먹었지요. 몇 년간 먹을 엄두도 못 냈지만 이젠 냉면에 식초, 겨자 곁들이는 건 기본에, ‘씹는 재미’를 논하는 단계가 됐죠.”

반면 수제비는 처음 먹었을 때부터 온몸에 전율이 돌 정도로 맛있었다. 1970년대 통행금지가 있고 무장한 군인들이 서울 삼청동 일대를 엄호하던 시절부터 삼청동 수제비를 즐겨 먹었고 지금도 즐겨 찾는다.

“얼마 전 중국에서 귀빈들이 와서 함께 삼청동 수제비집에 갔어요. 멀리서 온 손님들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그 가게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줄을 서야 하기 때문에 결국 귀빈들도 줄을 서 기다린 뒤 수제비를 먹었지요.”

서울 남대문의 ‘칼제비’(칼국수와 수제비가 동시에 나오는 메뉴) 역시 손에 꼽는 단골집이다. 세계 각지에서 중요한 손님들이 오면 함께 수제비를 먹으러 갈 때가 많다.

“남대문 칼국수 골목에 장사하시는 한 할머니가 있어요. 자리도 대여섯 개밖에 없고 아주 좁은 점포인데 한 그릇에 4500원 하는 그 국수 맛을 계속 찾게 돼요.”

“샴페인과 족발, 먹어보면 반해요”


한식 마니아 이 사장이 꼽는 한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중식은 ‘불맛’, 일식은 ‘칼맛’, 그리고 한식은 ‘손맛’이라고 정리했다.

“흔히들 일식은 칼로 어떻게 자르는지에 따라 맛이 다르다고 해서 ‘칼맛’이라 부르고, 중식은 불의 화력에 따라 다르다고 하면서 ‘불맛’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한국 음식은 결국 요리하는 사람의 ‘필링(feeling)’, 즉 정성이거든요. 맞는 요리법대로 한다고 해서 뛰어난 맛이 나오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는 본격적으로 맛집을 추천했다. 그가 추천한 맛집은 감자탕집부터 하우스 스테이크 전문점까지 온갖 장르를 넘나들었다.

이 사장이 모처럼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는 삼청동에 위치한 ‘비앙 에트르’를 찾는다. 이 식당은 한식 재료를 가지고 프랑스식으로 요리하는 것으로 유명한 식당이다. 이 사장은 “고기, 생선을 싱싱한 야채와 함께 먹을 수 있다”며 “분위기 좋은 삼청동에 걸맞은 맛집”이라고 평가했다.

이따금 고기가 생각날 때는 서울 이태원의 ‘코파카바나 그릴’을 자주 찾는다. 고기를 무한정으로 리필해주는 게 특징인 이 식당에 대해 그는 “많은 친구를 데려가 봤지만 단 한 명도 맛없다고 한 적 없다”며 장담했다.

그는 서울 광장시장도 자주 찾는다. 외국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좌판에 앉아 빈대떡과 잔치국수를 먹는 기분은 일품이다. 이 사장은 “외국 친구들에게 순대는 ‘호오(好惡)’가 갈리는 음식이지만 한번 좋아하기 시작하면 마니아가 된다”고 귀띔했다.

한식과 와인. 어쩐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지만 이 사장은 “한식이 의외로 와인과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샴페인과 족발은 정말 환상의 조합이에요. 종종 지인들과 서울 장충동 족발집에 스파클링 와인 ‘동 페리뇽’을 가져가서 마셔요. 얼음과 크리스털 잔도 직접 챙겨가죠. 처음엔 ‘웬 족발에 샴페인?’ 하며 이상하게 보던 사람들도 한번 먹어 보면 이 맛에 반해 다음부터는 자기들이 먼저 술을 챙겨요.”

여행은 창조경제의 기본

잘 쉬어야 일도 잘한다는 게 평소 지론이다. 그는 평소에도 한국 곳곳의 사찰과 서당, 문화유산을 찾아 사진을 찍는다. 최근에는 전북 전주에서 개화하기 시작한 매화와 산수유를 촬영했다.

여행에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먼저 준비하는 기쁨이고, 다음은 계획한 대로 실행하는 기쁨이다. 남들보다 알차게 준비한 만큼 비용을 덜 들이고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 마지막으로 추억의 기쁨이다. 추억이 담긴 사진을 정리하고 회상하면서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유럽 사람들은 올해, 내년, 때로는 후년까지 여행 계획을 다 세워놔요. 여행 정보를 수집하고 미리 계획하죠.”

평소 이 사장은 ‘2주 장기 휴가’의 필요성을 설파한다. 3년 전부터 한국관광공사는 직원들에게 2주 장기 휴가를 주고 있다. 처음에는 직원들조차 ‘2주간 뭘 하나’ ‘직원이 수시로 휴가를 가면 업무가 돌아가겠느냐’ 등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다. 하지만 현재 구성원의 반응은 뜨겁다.

이 사장은 “휴가 계획을 연초에 팀별로 짜놓으면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게 충분히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를 통해 휴가가 분산되는 효과도 있었다. 이전에는 직원의 80%가 극성수기인 8월에 휴가를 떠났지만 지난해에는 50%만이 7, 8월에 휴가를 떠났다. 그만큼 업무 공백은 줄어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 비상사태 때 공공기관장들이 휴가를 안 가는 게 상식이죠. 하지만 이와 별개로 여행이나 휴가가 부수적인 게 아니라 필수이자 생산적인 요소라는 인식이 생겨야 합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1년에 몇 번씩 휴가 가잖아요.”

새 정부가 주창하고 있는 ‘창조경제의 창의력’도 결국 충분한 휴식과 여행 속에서 나온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창의력은 책상 앞에서는 잘 안 나와요. 오히려 여행을 하다 보면 다양한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창조경제의 기본은 관광입니다.”

지난해 그의 믿음이 작은 기적을 만들었다. 한국관광공사는 삼성생명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삼성생명 내 직위가 서로 다른 직원 7명이 모이면 주중에 연차를 차감하지 않고 휴가를 보내주는 것이다. 7명의 직원은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여행코스로 1박 2일간 함께 여행한다. 이를 통해 사내 소통이 활발해지고 생산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관석·염희진 기자 jks@donga.com
■ 이참 사장이 추천하는 서울의 맛집 5곳은

▽코파카바나 그릴=브라질 남부지방의 ‘가우쇼’라고 불린 목동이 고기를 부위별로 꼬챙이에 꽂아 숯불에 구워 먹는 분위기를 재현한 곳. 2만9000원을 내면 소, 닭, 돼지고기 등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119-9. 영업시간 낮 12시∼오후 10시(주말은 오후 10시 반까지). 02-796-1660

▽비앙 에트르(bien etre)=)=프랑스어로 ‘참살이’라는 뜻의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 서울 강남에서 부대찌개 가게를 운영했던 박민재 씨가 프랑스에서 조리와 제과 제빵을 공부하고 차렸다. 팬에 구워 특유의 냄새를 없앤 푸아그라와 바닐라 향의 수플레는 이곳의 대표 메뉴다.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5. 영업시간 낮 12시∼오후 3시, 오후 6∼10시(월요일 휴무). 02-720-3959

▽비채나=조태권 광주요그룹 회장이 한식 세계화를 위해 지난해 문을 연 한식당. 능이버섯갈비만두 시래기홍합솥밥 등 고급 한식이 광주요(窯)의 고급 도자기에 담겨 나온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740-1. 영업시간 오전 11시 반∼오후 2시 반, 오후 5시 반∼10시 반. 02-749-6795

▽발우공양=조계종 산하 불교문화사업단이 운영하는 사찰음식 체험관. 이름은 사찰의 식사법인 발우공양에서 따왔다. 감자 연근 등의 튀각과 산야초 부각으로 이뤄진 에피타이저를 시작으로 샐러드, 전, 쌈밥, 버섯요리, 계절별 탕 요리 등을 코스 메뉴로 즐길 수 있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71. 영업시간 오전 11시 40분∼오후 3시, 오후 6시∼8시 50분. 02-2031-2081

▽젤렌(Zelen)=불가리아 출신 셰프가 요리하는 불가리아 전통 음식 레스토랑. 불가리아에서 직접 가져온 유산균으로 만드는 요거트와 고기와 쌀을 채운 피망을 오븐에 구운 메뉴 ‘팔라니 추스키’ 등이 인기 요리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7가길 52.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3시, 오후 6∼11시. 02-749-0600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