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사람의 이름이 처음 같이 거명된 것은 2010년 ‘가정식백반 맛있게 먹는 법’이란 2인극이 대학로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서였다. 대학로 중견극단인 작은신화를 이끌던 연출가 최용훈(50)은 대학로 터줏대감으로 명성이 높았다. 하지만 김숙종(37)이란 극작가는 무명에 가까웠다. 》
‘가정식백반…’은 가정식백반 조리법을 배우는 고아 출신의 무명 만화가와 그의 집을 찾은 도서방문판매원의 만남을 통해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선의의 거짓말이 초래하는 아픔을 코믹 스릴러로 담아냈다. 2009년 대학로 2인극 페스티벌에 출품된 이 작품은 지금까지 대학로에서 5차례나 공연되며 이 페스티벌이 배출한 최고의 히트작이 됐다.
그러더니 지난해 서울연극제에 출품된 ‘콜라소녀’라는 엉뚱한 제목의 연극에도 역시 두 사람의 이름이 등장했다. ‘콜라소녀’는 노모를 모시고 시골 고향집을 지키는 장남의 환갑을 맞아 열린 3형제의 가족모임에서 쉬쉬하는 막내딸의 비밀에 얽힌 이야기를 웃음과 눈물로 풀어냈다. 이 작품은 나흘간 5회 공연이 전석 매진되고 보조석까지 꽉 채우더니 올해 3월 8일∼4월 14일 대학로 소극장 학전 블루에서 장기 공연 중이다. 그렇게 대학로 막강 콤비로 떠오른 두 사람을 한꺼번에 만났다. 언론 인터뷰가 거의 처음이라는 김 작가는 직장생활 20년차의 베테랑 직장인이다.
“여상을 졸업하고 회계담당자로 제법 인정을 받게 됐는데 대학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신입사원보다 월급을 적게 받는다는 걸 안 당시 회사 사장님이 ‘아무 대학이나 대학졸업장만 가져오라’고 해서 2000년 야간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어요.”
졸업장만 따면 된다는 생각에 수업을 듣던 그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처럼 가슴 떨린 경험을 하게 됐다. 무미건조한 직장생활에 지쳐 ‘나이 마흔에 그냥 팍 죽어버릴까’ 생각하던 그는 글쓰기의 재미에 폭 빠졌다. 그 즈음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다 대사 한 줄 없는 단역배우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말 흉내 내는 것을 보고 ‘아, 한 사람을 저렇게 혼신의 노력을 다하게 만드는 세계를 알고 싶다’는 생각에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연극계 인맥도 없고 부끄럼도 많았던 그는 각종 희곡공모전에 자신의 작품을 응모하는 것으로 그런 열망을 대신했다. 이달 말 나올 그의 첫 희곡집에 실릴 여섯 편의 희곡 모두 이런저런 공모전 당선작이다. 그런 김 작가의 글을 눈여겨봤던 최 연출이 희곡공모전으로 열린 2009년 2인극 페스티벌에서 김 작가의 작품을 골라내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콜라소녀’도 지난해 ‘배우, 희곡을 찾다’란 희곡공모전에 당선한 뒤 “어떤 연출가와 작업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은 김 작가가 “최용훈 선생님요”라고 답해 공동작업이 이뤄졌다.
“김 작가 작품은 젊은 날부터 희곡을 쓴 작가들과 달리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진한 감동을 안겨주는 매력이 있습니다. 또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려 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점이 좋아요. 그래서 그런지 연출을 하면 할수록 좋아져요. 제가 원래 재공연 안 하기로 유명한 연출가인데 ‘가정식백반…’을 계속 재공연하고 ‘콜라소녀’까지 1년 만에 재공연하는 것을 보고 김숙종이 숨겨 둔 애인 아니냐는 오해까지 받는걸요.”
첫 작품은 연출가가 작가를 택했고, 두 번째 작품은 작가가 연출가를 택했다. 세 번째 작품은?
“다음 작품 다 쓰면 무조건 나한테 먼저 들고 와요, 김 작가.”
“그래도 될까요, 최 선생님?”
이제 “연극은 즐거움이자 행복”이라고 거침없이 말하게 된 늦깎이 작가와 “연극은 끊임없는 변신”이라는 베테랑 연출가의 눈가에 봄 아지랑이 같은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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