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커버스토리]달리기, 마음의 만병통치약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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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의 힐링효과 과학적인 근거는

달리기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건강에도 좋다. 삶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오늘 한번 달려보자.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달리기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건강에도 좋다. 삶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오늘 한번 달려보자.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정보연 씨(34)는 20세 때 우울증에 걸렸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무기력감이었다. 무슨 일이든 미뤘고, 집중하지 못했다.

그는 용기를 내 병원을 찾았다. 약물과 심리 치료를 받았다. 그러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정 씨는 달리기 예찬론자가 됐다.

“물론 약물 치료도 도움이 됐어요. 그런데 달리기는 그보다 더 장기적인 효과가 있었어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나 할까요? 달리기를 꾸준히 하면 정신적인 세팅(setting)이 바뀝니다. 지금 우울하거나 삶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싶은 분들은 꼭 달리기를 하세요.”

정 씨는 지금 학원 강사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지난해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을 엮은 책(‘행복을 미루지 않기를 바람’)을 펴내기도 했다.

달리기와 명상 효과

“마음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세요?”

서울아산병원 스포츠의학센터의 진영수 교수가 전화기 너머로 말했다. 곧이어 “지금은 생각과 감정을 지배하는 것은 뇌란 사실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운동, 특히 달리기는 그런 뇌를 긍정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달리기가 몸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좋다는 말이지요”란 설명이 이어졌다.

달리기는 ‘철학적인 운동’이다. 사람은 누구나 달리는 동안, 특히 혼자서 뛸 때 자기 자신을 직면하고 발견한다.

미국의 심장병 전문의이자 작가인 조지 쉬언은 ‘달리기와 존재하기’란 책에서 ‘달리기는 그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내면의 풍경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했다’고 썼다.

때로 달리기는 명상과 비슷한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직장인 김형식 씨는 “달리기를 하다 보면 머릿속이 환해지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이렇게 머릿속이 환해지거나 텅 빈 것 같아지는 느낌은 명상에서 말하는 무념무상의 상태와 같다. 이때는 뇌가 잡념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게 된다.

머릿속이 환해지는 느낌은 다른 운동이 아닌, 유독 달리기에서 자주 생긴다. 그것은 달리기와 명상의 기본 원리가 같기 때문이다.

독일의 예방의학 전문의 게르트 슈나크 박사는 반복, 즉 계속 되풀이되는 진동구조가 명상에 들어가는 열쇠라는 점을 밝혀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란 용어가 있다. 가벼운 마약 중독 상태와 비슷한 이 행복감은 고통에 대응하는 호르몬 분비에서 생기기도 하지만 규칙적이며 반복적인 다리의 움직임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오기도 한다.

김 씨는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에도 달리기를 한다. 한참을 달리고 나면 어려운 문제가 손쉽게 풀릴 때가 많다. 이것은 달리기의 철학적 기능과 명상 효과 덕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달리는 행위가 그의 뇌를 활성화시킨 덕분이다.

존 레이티 하버드 의대 교수가 쓴 책 ‘운동화 신은 뇌’에는 미국 시카고의 네이퍼빌센트럴 고등학교 사례가 나온다. 이 학교는 전교생에게 수업 시작 전 1마일(1.6km) 달리기를 시킨다. 그렇게 운동을 한 직후인 1, 2교시에 어려운 과목을 배치한다.

운동 직후에는 혈액 순환이 잘돼 활성화된 뇌가 최적의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한 후에는 그야말로 뇌가 ‘팽팽’ 돌아간다. 실제로 네이퍼빌센트럴 고등학교 학생들은 달리기를 시작한 후 전국 최고 수준의 학업 성취도를 기록했다.

스트레스는 뇌를 부식시킨다

여기서 뇌(생각 및 감정)와 달리기의 관계에 대해 좀더 알아보자. 누구나 운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안다.

확실히 달리기를 비롯한 운동은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이고 우울증과 불안감, 불면증 해소에 큰 효과가 있다.

현대 뇌 과학의 발달은 달리기가 어떻게 기분을 좋아지게 하고 두뇌를 활성화하는지를 하나하나 증명하고 있다. 진 교수에 따르면 달리기를 하면 첫째, 신경세포(뉴런)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늘어나고 인지능력과 연관된 해마세포가 증가한다. 즉, 신경세포들이 서로 결합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조성돼 기억력과 인지능력이 향상된다.

둘째,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등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균형 있게 증가한다. 이 물질들은 사고와 감정의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파민은 학습과 만족감, 집중력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쾌감과 즐거움에 관련된 신호를 전달해 사람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역할도 한다.

노르에피네프린은 뇌의 신호를 증폭시켜 집중력과 인지능력, 의욕 등에 영향을 준다. 세로토닌은 기분과 식욕, 수면을 조절할 뿐만 아니라 기억력과 학습에도 영향을 미친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달리기 같은 유산소 운동은 또 스트레스 대응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과다 분비를 막는다. ‘운동화 신은 뇌’에는 과도한 양의 코르티솔이 어떻게 뇌를 부식시키는지 잘 나와 있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수치가 너무 높으면 해마의 뉴런이 파괴되기 시작한다. 뉴런이 들어 있는 배양 접시에 코르티솔을 부어 보면 뉴런이 가지를 모두 거두어들여서 뉴런 간의 연결이 끊어진다. 그러면서 서로 의사 전달을 할 수 없는 통신 불능의 사태가 발생하는데, 이런 이유로 우울증 환자가 부정적인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달리기를 비롯한 운동은 우울증뿐만 아니라 동맥경화와 당뇨병, 복부비만 등 만성 스트레스가 가져오는 나쁜 결과를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숨찰 정도로, 매일 30분이상 뛰면 ‘브레인 파워’ 쑥쑥 ▼


햇빛을 받으며 달려라


그렇다면 이렇게 몸에 좋은 달리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초보자는 처음부터 무리하게 목표를 잡지 않는 게 좋다. 너무 힘이 들면 모처럼 내린 결정이 작심삼일로 끝날 수 있다.

정보연 씨는 “운동은 지극히 즐거운 평생 습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처음부터 ‘화끈한 목표’를 잡는 대신에 자기 자신에게 ‘운동은 힘도 안 들고 재미도 있으며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정보를 살살 흘려주세요. 그런 다음에 운동량을 늘려도 됩니다.”

그는 “햇빛을 받으며 달리면 더 좋다”고 덧붙였다.

진영수 교수는 “달리기는 각자의 체력에 맞춰 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정답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뛰는 도중에 생기는 잡념을 없애려면 숨이 다소 차게 뛰어라”고 조언했다.

스포츠 전문가들은 달리기에 익숙한 사람은 심박수를 최대치의 60% 이상으로 유지하면서 30분 이상 달리면 좋다고 말한다.

물론 심장질환이나 고혈압이 있는 사람은 처음엔 무리를 하지 말고 의사와 상담 후 달리기를 시작하는 게 좋다.

만약 혼자서 달리는 게 부담된다면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것도 괜찮다. 레이티 교수는 “친구나 가족에게 매일, 가능하면 같은 시간에 함께 동네 한 바퀴만 돌아달라고 청하라”고 말했다.

현재 외국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우울증 환자들이 함께 모여 단체로 달리기를 하는 사례가 상당히 많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면서 달리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삶이 고달파 지쳐 있다면, 특히나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다면 오늘부터라도 당장 당신이 사는 동네를 한번 달려보면 어떨까.

복잡한 생각은 하지 말고 무조건 한번 달려 보자. 조금만 노력하면 당신의 몸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위안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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