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5>이율배반 남자 원하는 이율배반 여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30일 03시 00분


자고 일어나면 바뀌어 있는 게 여자들의 마음이다. 이번엔 ‘상남자’가 대세란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면 이런 이율배반이 없다. 그들이 원하는 남자상을 간추려 보면 이렇다.

‘짐승남이지만 초식동물의 눈망울을 가지고 있으며, 친절하면서도 터프해서 마음을 졸이게 한다. 연민을 자아낼 상처를 품고 있는 동시에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도 가지고 있다. 시간이 많아서 무엇이든 함께 해주지만 사회적으로 성공도 해야 한다.’

그들은 이렇게 이율배반적인 남자를 원한다. 다만 현실에서 찾아내기가 어려울 뿐이다.

물론 남자들이라고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배우자감으로 예쁘고 순종적이면서 능력까지 뛰어나 돈도 많이 벌어오는 여성을 원하는 대목이 그렇다. “예쁘면 나머지는 용서가 된다”고는 하지만.

선택이란 원하는 것을 위해 나머지를 희생한다는 의미인데, 오로지 경쟁에만 몰입하다 보니 남자든 여자든 좋은 것을 죄다 손에 넣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그런데 이율배반이란 측면에선, 여자들이 남자보다 두드러진다. 원하는 것의 폭이 엄청나게 넓어서 양립 불가능의 극단을 동시에 바란다고나 할까. 다소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차가운 불꽃’처럼.

때로는 여자라는 존재 자체가 이율배반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혼자만 돋보여 주목을 받고 싶어 하면서도 소외당할까 봐 두려워 무리에 끼려고 필사적이다. 경쟁에선 승부사이지만 동시에 소녀 같은 감성을 드러내며 어여쁘게 여겨지길 원한다. 남의 멋진 옷을 보면 부러워하면서도, 누군가가 자기와 똑같은 옷을 입고 있으면 기분이 나쁘다.

이런 이율배반이 전혀 낯선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루스 베니딕트의 ‘국화와 칼’에 나타난 일본인들도 비슷하다. 국화를 가꾸며 평화를 사랑하는 듯하면서도 칼을 숭배하고, 로봇처럼 일사불란하다가도 느닷없이 반항한다.

여자들의 이율배반적인 속성이 남자들보다 두드러진 까닭은, 그들이 매우 오랫동안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살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스스로보다는 남편 혹은 아들을 통해 원하는 것을 도모하는 게 여자들 운명의 대물림이었다. 그러니 보다 편안하게 모순적인 것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현대의 여자들은 이율배반적 요구를 받는 입장이기도 하다. 밖에서는 승승장구하는 직업인, 그러나 집안에서는 스스로를 희생하는 착한 여자여야 한다는 압박 말이다. 가부장제 파수꾼을 자처하는 엄부(嚴父)라도 자기 딸만큼은 성공한 직업인으로 키우고 싶은 세상이니까.

그래서 많은 여자가 ‘강한 모습’을 연기하면서도 이따금 무르고 약한 속을 드러내어 위로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한상복 작가
#상남자#이율배반#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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