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윤발의 ‘밀키스’와 왕조현의 ‘크리미’를 마시며 장국영의 ‘투유’ 초콜릿을 씹어본 사람은 안다. 아버지 선글라스 꺼내 끼고 성냥개비 입에 문 다음 모형 베레타 권총에 비비탄 장착하는 기분을.
2003년 4월 1일 만우절. ‘마음이 피곤하여 더이상 세상을 사랑할 수 없다’는 유서를 남긴 채 홍콩 만다린오리엔탈 호텔 24층 객실 밖으로 몸을 던져 장궈룽(장국영)은 자살했다. 1980, 90년대 홍콩영화에 열광했던 이들에게는 한 세대의 종언과 같은 사건이었다.
책은 10주기를 맞은 장국영에 대한 저자의 ‘팬심(fan心)’ 가득하고 긴 헌사다. 에세이와 영화 리뷰, 인물론과 기행문이 영화의 컷과 컷처럼 촘촘히, 경계 없이 얽혀 있다.
영화전문지 기자이자 홍콩영화 전문가인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신뢰감을, 꼼꼼한 현지답사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영웅본색’ ‘패왕별희’ ‘아비정전’ ‘종횡사해’ ‘금지옥엽’ ‘동사서독’ ‘해피 투게더’ 같은 널리 알려진 작품은 물론이고 ‘연지구’ ‘영몽가락’ ‘가유희사’ ‘열화청춘’ ‘H2O’ 같은 덜 알려진 영화에 이르기까지 인상적인 장면들을 들추며 장국영의 그림자를 좇는다.
저자는 홍콩과 마카오를 돌며 영화 촬영지, 장국영의 단골 이자카야, 생전 거주지, 출신 학교까지 답사했다. ‘아비정전’의 퀸스 카페, ‘연분’의 애드미럴티 역처럼 장국영이 머물렀던 영화 속 공간에 대한 감성적 스케치는 관광청 홍보물보다 자력(磁力)이 세다. 주윤발 왕가위 성룡 적룡 오우삼 관금붕을 비롯해 장국영과 인연을 맺은 배우와 감독의 인터뷰 내용도 책의 중요한 조각이다.
장국영의 덜 알려진 출연작 얘기가 많아 고인의 열성 팬이 아니라면 약간 지루할 수도 있다. 장국영의 출연작을 10편 이상은 봐야 책의 재미를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주목할 점은 책 속에 저우룬파 왕쭈셴 디룽 왕자웨이 대신 주윤발 왕조현 적룡 왕가위가, 장궈룽 대신 그 시절 장국영이 살아 숨쉰다는 것이다. 이는 제목을 ‘내가 사랑했던…’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했던…’으로 정한 것만큼 결정적인 책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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