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 미국에서 한 소년이 총에 맞아 열일곱 짧은 삶이 멎었습니다. 손에는 금방 편의점에서 사온 사탕과 음료수 캔이 들려 있습니다. 비를 맞지 않으려 뒤집어쓴 ‘후드’ 위로 피가 배어나옵니다. 후드티를 입은 모습이 위협적이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총을 쏜 스물여덟의 청년이 연행되었습니다. 사건은 그렇게 끝이 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스물여덟 청년이 체포되지 않고 풀려났습니다. 열일곱 소년이 흑인이라 위협적일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자신이 위협적이라고 생각되면 확인하지 않고 무기를 사용해도 된다는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법이 적용되었습니다. 스물여덟 청년은 백인입니다. 흑인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한 미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정의롭지도 않고 정당하지도 않지만, ‘합법적’인 이 상황이 내 앞에 닥쳤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라는 질문에서 이 동화가 시작됩니다. 열일곱 마틴의 옆집에 사는 열세 살 제이가 주인공입니다. 제이에게 마틴은 둘도 없이 좋은 형입니다. 제이는 한국인 입양아, 자신이 버려진 아이라는 사실이 늘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죠. 마틴은 이런 제이에게 넌 버려진 아이가 아니라 ‘발견된’ 아이라고 힘을 줍니다. 폭력에 대해선 더 큰 폭력이 아닌 마음으로 맞서야 한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그런 형이 죽었는데,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제이는 용기를 냅니다. 작은 아이의 용기는 비겁했던 여러 사람들을 부끄럽게 했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각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동화를 읽다 보면, 이것이 실제 일어난 일이란 것이 답답합니다. 제이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도 인종차별의 대상일 수 있음이 가슴 서늘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이 땅에서 우리도 별 죄의식 없이 인종차별을 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차별에 대한 인식, 그것이 용기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나 하나 작은 힘이 움직인다고 세상이 많이 달라질까요? 동화는 마지막에 이렇게 답을 줍니다. “그건 모르지. 하지만 세상은 변할 거야. 아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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