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당시 19세의 옥스퍼드대 학생 산드라(전혜진)와 케네스(이선균)는 이렇게 외치며 비틀스의 ‘올 유 니드 이즈 러브(All You Need Is Love)’에 맞춰 춤을 춘다. 정부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명문대를 다니던 케네스는 형의 애인이던 산드라와 사랑에 빠진다. 그들 커플에게 로큰롤은 구태의연한 기성세대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표상이었고, 대마초 피우는 행위는 위선적인 기성제도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려는 몸짓이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욕망에 거침없이 솔직한 것이 미덕이요, 금기를 깨는 것이 곧 자유요, 기성에 물들지 않는 신선함은 생명이었다.
“이혼밖에 없어…. 우리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야.”
하지만 20여 년 뒤인 1990년 그들은 그처럼 야유하고 경멸했던 일상의 노예가 돼 나타난다. 겉으론 반항심 많은 사춘기 자녀를 둔 이해심 많고 헌신적인 부모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녀와의 대화를 자세히 들어보면 산드라 부부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는다. 모든 상황을 자기들 중심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이들 뒷바라지 때문에 젊은 날 자신들이 꿈꾸던 삶에서 멀어졌다고 푸념하기 바쁘다. 그러다 서로의 불륜을 알고 딸의 생일잔치 석상에서 자녀들의 의견은 무시하고 일방적 이혼을 선언한다.
“로지, 이건 네 인생이야. 네 인생 네가 사는 거야.”
다시 20여 년 뒤인 2011년 60대 연금생활자로 각자 황혼녘 인생을 만끽하던 산드라와 케네스는 맏딸 로지(노수산나)의 호출을 받고 오랜만에 해후한다. 아들 제이미(노기용)는 부모의 무관심으로 대인기피증 환자가 됐고 로지는 재능도 없는 헛된 꿈을 좇다가 노처녀 백수가 됐다. 로지는 자신의 인생을 부모가 망쳤다며 책임과 보상을 요구한다. “엄마 아빠가 세상을 바꿨어? 아냐. 세상을 샀어. 사유화했어. 엄마 아빠가 한 게 뭐야? 평화? 사랑? 웃겨. 그냥 자기네 원하는 대로, 자기네 맘대로 한 것뿐이야.” 하지만 돌아온 답은 더 유치하다. “엄마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 말 안 들었어. 도대체 왜, 우리 말을 들은 거야? 반항했어야지.”
영국의 떠오르는 젊은 극작가 마이크 바틀릿의 최근작을 번역한 이 3막의 연극(이상우 번역·연출)은 한국의 386세대에 비견되는 서구 68세대의 변질과 타락을 이렇게 달콤 씁쓰레하게 풍자한다. 이선균 전혜진 부부가 능청스럽게 연기한 케네스와 산드라 부부는 1막에서 자유분방하면서도 귀여운 연인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2막에서 속물이 되어버린 맞벌이 중산층 부부로 바뀌면서 그들이 꿈꿨던 자유라는 게 결국 인생을 살면서 짊어져야 할 책임의 방기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3막에서 황폐해진 자녀들의 삶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관심사에만 몰두하는 지독한 나르시시스트로 묘사함으로써 68세대가 진짜 속물 아니냐고 고발한다.
68세대와 386세대를 단순하게 등치시킬 순 없다. 하지만 한때 자유와 평등을 목 놓아 부르던 이상주의자들이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 그들이 비판했던 기성세대보다 더 지독한 현실주의자가 되어버린 것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운 이들이 얼마나 될까. 다행히 한국의 386세대에게 3막의 시간은 아직 닥치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다른 3막을 기대해도 될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