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지에 앉은 백조날개처럼”… 아버지 말씀대로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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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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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광탄면 서원힐스CC 클럽하우스
이타미준 유작 완성한 유이화 대표

클럽하우스는 너무 정적이거나 동적이 아닌, 적당한 긴장감이 필요한 건축물이다. 서원힐스CC 클럽하우스는 막 내려앉은, 혹은 막 날아오르려는 새의 날개를 닮은 지붕으로 이 긴장감을 표현했다. 사진작가 남궁선 씨 제공
클럽하우스는 너무 정적이거나 동적이 아닌, 적당한 긴장감이 필요한 건축물이다. 서원힐스CC 클럽하우스는 막 내려앉은, 혹은 막 날아오르려는 새의 날개를 닮은 지붕으로 이 긴장감을 표현했다. 사진작가 남궁선 씨 제공
《 “넘실거리는 산세에 둘러싸인 고요한 분지, 백조가 가만히 내려앉은 듯한 건물이면 좋겠군. 날개를 펴며 막 비상하는 모습이어도 좋고.” 주변을 둘러보고 영감을 얻은 아버지는 연필로 스케치했다. 새의 큰 날개 두 개를 비스듬히 포개놓은 듯한 지붕이 나지막한 공간을 덮고 있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완공을 못 보고 타계했고 유작의 마무리는 딸이 맡았다. 》

이타미준과 딸 유이화 대표(왼쪽).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제공
이타미준과 딸 유이화 대표(왼쪽).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제공
재일교포 2세 건축가 이타미준(유동룡·1937∼2011)과 유이화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대표(39)가 함께 설계한 서원힐스CC 클럽하우스다. 석재와 나무, 알루미늄 캐스트, 검은 벽돌, 동판을 이용해 경기 파주시 광탄면에 지하 1층, 지상 2층(연면적 8040.64m²) 규모로 지은 건축물이다. 주변 산세와 비교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유작(遺作)은 자연의 일부인 양 겸허함을 강조했던 고인의 건축 철학을 보여준다. 짙은 색감과 날렵한 지붕선에서는 일본풍도 느껴진다. “아버지께선 건축이란 땅에서 와서 땅으로 돌아가는, (영원한 자연에 비하면) 잠깐 왔다 가는 아이 같은 존재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주변 에너지를 누르지 않고 자연을 받아들이는 겸손한 건축을 해야 한다고 하셨죠.”

일본에서 건축을 배우고 활동해온 아버지, 이화여대와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실내디자인 및 건축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일해온 딸의 협업은 2001년 딸이 이타미준 건축연구소의 한국지사장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딸은 도쿄에 사는 아버지와 팩스와 전화를 주고받으며 제주의 포도호텔, 방주교회, 물 바람 돌 미술관 같은 명품을 지어냈다. 서원힐스CC 클럽하우스는 부녀간 협업의 마지막 결과물이다.

“학교에서보다 아버지께 배운 게 더 많아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서울 외가에서 살았어요. 그때부터 아버지가 한국에 출장오실 땐 현장을 따라다니며 통역을 해드렸죠. 놀이공원에 갈 나이에 ‘건물 선은 이렇게 가야 하고, 디테일은 이게 아니고…’ 하는 통역을 했던 거예요. 아버지 생각이 건물로 구현되는 걸 보며 어린 저도 가슴이 벅찼어요.”

이타미준은 화가이고, 조선 민화 전문가이자 한국 고미술 수집가로도 유명하다. 1968년 민화에 빠져든 뒤 도자기 불상까지 1200점 넘게 모았다. “조선 백자는 내 미의식의 기원이자 스승”이라고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건축에서 한국미를 찾아내는 이가 많다.

“백자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고 눈이 저 깊은 곳까지 들어가며 온기가 전해진다고 좋아하셨어요. 상자 안에서 꺼내 쓰다듬고 사진 찍고 술 한잔 마시고, 그렇게 할머니 품에 안기듯 (재일교포의 힘든 삶을) 위로받으셨던 것 같아요.”

큰 스승을 떠나보낸 유 대표는 2007년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아버지와 함께 지은 건물에서 자신만의 건축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60세가 돼서야 “이제야 내가 어떤 건축을 하는지 알겠다”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조급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언만 생각하면 어깨가 무겁다. ‘이타미준 문화재단을 설립하고 건축상을 제정할 것, 자금은 나의 컬렉션을 이용해 마련할 것, 이 모든 책임은 유이화가 질 것.’

국립현대미술관이 10월 개최하는 이타미준 상설 기획전은 그의 건축 철학을 정리하고 평가하는 첫 작업이다. 유 대표가 기증하는 드로잉 회화 설계모형 등을 전시하고 박길룡 국민대 건축대학 명예교수, 전봉희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등이 그의 작품을 연구해 발표한다. 박 교수는 “이타미준의 건축적 수사는 미술과 시와 고미술에서 단련된 힘이며 그의 건축을 자꾸 돌아보게 하는 다이얼로그다”고 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클럽하우스#이타미준#유이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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