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마’보다 괄괄한 골목대장. 9남매 막내딸이라 이름은 ‘구순’이다. 도시화 바람이 불던 1970년대 전라도에 살던 구순이네도 서울로 갔다. 언니 오빠까지 막노동을 나가도 삶은 팍팍했다. 까만 피부와 꼬질꼬질한 옷 때문에 언제나 놀림을 받았다. 맘 둘 곳 없는 도시, 구질구질한 식구들. 그는 도망치듯 혼자 프랑스로 떠났다. 세월이 지나 프랑스에서 만화가로 자리잡은 구순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다.
지난달 만화책 ‘아버지의 노래(Le Chant de Mon P`ere)’ 한국어판을 출간한 김금숙 씨(42·사진) 얘기다. 실제 8남매의 일곱째인 것을 빼면 그의 삶이 작품의 바탕이 됐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 책은 몽펠리에 만화축제에서 ‘문화계 저널리스트들이 뽑은 언론상’을 수상했다.
김 씨는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을 떠났던 1994년부터 16년 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책으로 털어내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갑작스럽게 귀국을 결정했다. “우연히 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민혜성 선생의 판소리 ‘흥보가’를 듣고 한 달 만에 남편과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판소리와 한국 고미술품을 소재로 한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요.”
그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제가 프랑스로 떠나고 1년 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아버진 서울에서는 담배만 뻑뻑 피우셨죠. 시골에서는 ‘사랑가’를 멋들어지게 부르던 최고 소리꾼이셨는데….” 어릴 때 청승맞게만 들리던 판소리에 요즘 그는 흠뻑 빠져 있다.
국내에서는 ‘아버지의 노래’가 데뷔작이지만 프랑스에서는 한인신문 ‘한위클리’와 ‘프랑스존’에 만화를 연재하고 단행본도 출간했다. 프랑스에서 출간된 그의 작품 ‘베로니크’ ‘할머니’ ‘내 산에 오르기’는 친구의 죽음과 이산가족, 인연 등을 주제로 담았다. 이희재의 ‘간판스타’, 이현세의 ‘늑대의 피’, 박건웅의 ‘노근리 이야기’ 등 100여 권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원래 그의 꿈은 조각가였다고 한다. “조각을 공부했는데, 가난 때문에 만화를 시작했어요. 재료비가 덜 들어서요. (웃음) 그런데 막상 만화를 그리다 보니 10년 넘은 조각 공부가 만화를 위한 내공을 쌓는 과정이었구나 싶을 정도로 푹 빠졌죠.”
이제 불혹을 훌쩍 넘긴 구순이는 한동안 떠나 있던 조국과 핏줄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한국인 입양아 독자들로부터 ‘핏줄과 정이 뭔지 어렴풋이 느꼈다’는 편지를 받았을 때가 가장 뿌듯했어요. 빠져나오고 싶던 늪처럼 느껴지던 고향을 점점 그리워하던 저랑 동질감도 느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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