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저미는 연주, 소름 돋는 목소리 ‘故 김광석 향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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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6일 07시 00분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김광석 같은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인 이풍세(박창근 분)가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LP스토리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김광석 같은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인 이풍세(박창근 분)가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LP스토리
■ 어쿠스틱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

故 김광석 음악 모티브 콘서트형 뮤지컬

하모니카·통기타 등 배우들이 직접 연주
스토리 최대한 억제하며 23개 명곡 선사
박창근·최승열 꼭 닮은 음색…감동 물결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 빈 방문을 닫은 채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김광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포말처럼 사라져갔다. 애잔한 추억이 ‘싸아아’ 비명을 지르며 모래 속으로 스며든다.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서른 둘. 청춘의 꽃은 겨우 망울만 맺혔을 뿐인데 그는 언강 세찬 눈보라가 되어 우리 곁을 떠났다. 김·광·석. 그의 음악을 구슬처럼 스토리에 꿰어 만든 뮤지컬이 올해 세 편이나 관객과 만난다.

‘어쿠스틱 뮤지컬’이란 부제를 단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세 편 중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른 작품이다. 지난해 대구에서 막을 올려 호평을 받았고, 여기서 탄력을 받아 5월 19일까지 서울 동숭동 아트센터K 네모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역시 김광석의 음악을 모티브로 한 뮤지컬 ‘그날들’도 4일 대학로뮤지컬센터에서 개막했다. 세 번째 김광석 뮤지컬은 장진 감독이 연출을 맡아 연말께 모습을 드러낼 예정.

김광석의 노래 제목을 그대로 따 온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중대형 극장에서 공연하는 다른 두 작품과 달리 아담하고 소박한 소극장용 작품이다. 배우들이 노래뿐만 아니라 악기까지 연주하는 콘서트 형식으로 구성됐다.

● 드라마를 죽이니 음악이 살아났다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그나마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뒤로 사라진다), 구석에 세워놓은 통기타, 등받이도 없는 작은 의자 몇 개. 소박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 무대다. 심드렁한 얼굴로 무대를 내려다보던 관객들은 그러나 주인공 이풍세의 입에서 나지막하게 ‘거리에∼’가 흘러나오자마자 순식간에 무장 해제되어 버리고 만다. 어느새 촉촉해진 두 눈은 무대 위의 배우에게 고정되어 있지만, 머릿속에는 또 다른 영상이 한 겹씩 쌓여간다. 하긴, 이 공연 보러 온 관객 중에 김광석 노래에 얽힌 사연 하나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뮤지컬은 음악이 전면에 서는 장르지만 스토리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미덕은 아이러니하게도 스토리를 최대한 억제해 놓았다는 데에 있다. 스토리는 노래(넘버)와 노래 사이를 느슨하게 붙여주는 접착제 역할에 만족한다.

김광석같은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95학번 대학생 이풍세와 몇 명의 선후배들이 ‘블루 드래곤즈’라는 통기타 그룹을 결성해 대학축제에 나가 1등을 한다. 이풍세는 군대를 가고, 제대해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하다 연예기획사 ‘이돈만’ 사장의 눈에 띄어 보이그룹의 멤버가 된다. 그 후 쫄딱 망해서 막노동을 하고, 훗날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블루드래곤즈’ 멤버들이 다시 모여 콘서트를 연다는 것이 이 작품의 스토리다.

● 김광석보다 더 김광석 같은…주연들 음색, 창법 똑같아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는 김광석이 남긴 스물 세 곡의 노래가 등장한다. ‘거리에서’, ‘나의 노래’, ‘어느 목석의 사랑’,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 ‘이등병의 편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사랑했지만’, ‘서른 즈음에’,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변해가네’ 등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저며진다. 김광석의 애절한 하모니카, 오케스트라처럼 울리던 기타, 폐부를 한껏 죈 뒤 목구멍을 통해 일거에 쏟아내는 듯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울린다.

이 뮤지컬을 좀 더 재미있게 관람하기 위한 팁 하나. 이풍세 역을 맡은 가수 박창근과 배우 최승열의 음색과 창법은 김광석을 복제한 듯 빼닮았다. 노래를 듣다보면 종종 소름이 돋는다. 여러 역을 숨 가쁘게 번갈아 맡는 멀티맨 역의 박정권, 맹상열의 감초연기는 각자의 추억 속에 빠져든 관객들을 다시 무대로 돌아오게 해준다.

김광석의 그림자가 길고 짙게 드리워진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면 김광석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양기자의 내 맘대로 평점

감동★★★☆ (애잔한 추억이 몰고 오는 감동의 힘!)
웃음★★★☆ (폭소극까진 아니지만 웃기는 장면이 꽤 있다)
음악★★★★ (스물세곡에 모두 별 네개를 박아주고 싶다)
무대★☆☆☆ (소박한 밥상)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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