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 장애인… 그들 안에 우리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9일 03시 00분


연극 ‘사요나라’ ★★★★ & ‘장애극장’ ★★★★

어두운 조명에선 인간과 구별이 어려운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 연극 ‘사요나라’(왼쪽)와 스위스의 지적장애인 10명이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연기한 ‘장애극장’. 페스티벌 봄·우루술라 카우프만 제공
어두운 조명에선 인간과 구별이 어려운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 연극 ‘사요나라’(왼쪽)와 스위스의 지적장애인 10명이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연기한 ‘장애극장’. 페스티벌 봄·우루술라 카우프만 제공
20세기였다면 주변부적 존재였던 그들은 구경거리로만 무대에 섰을지 모른다. 하지만 21세기 그들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타자(他者)로서 당당히 무대의 주인공이 됐다. 페스티벌 봄의 초청으로 지난주 국내 관객과 만난 ‘사요나라’(4, 5일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의 사이보그와 ‘장애극장’(6, 7일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의 지적장애인들이다.

일본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히라타 오리자의 ‘사요나라’는 공연 시작 15분 전부터 무대 위 어둠 속에 마주 앉아 침묵을 지키는 두 여인을 어렴풋이 보여준다. 누가 진짜 인간이고 누가 사이보그일까.

죽음을 앞둔 소녀에게 그의 말동무가 된 제미로이드(실제 인물을 본떠 만들어진 쌍둥이 안드로이드)가 시를 읊어준다. 미리 녹음된 감성적 목소리에 맞춰 움직이는 입매, 섬세한 눈 깜빡임, 그리고 목과 손의 움직임까지. 인간과 로봇의 경계를 서성이던 연극은 소녀가 죽고 홀로 남은 제미노이드의 횡설수설을 통해 아련한 상실감과 외로움까지 담아낸다.

제미노이드를 만든 히로시 이시구로 오사카대 교수는 공연 뒤 질의응답 시간에 ‘왜 제미노이드냐’라는 질문에 “무엇이 인간적인 것인지를 알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그렇다. 안드로이드는 기계화된 인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간의 본질을 되비추는 영혼의 거울이다. 그래서 연극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프랑스의 안무가이자 연출가인 제롬 벨이 스위스 장애인극단 호라와 만든 ‘장애극장’은 10명의 지적장애인만 출연한다. 1시간 반의 공연이 시작되면 관객은 스무 살에서 마흔세 살에 이르는 10명의 지적장애인을 1인당 1분씩 침묵 속에서 대면하게 된다.

그 순간 그들은 완벽한 타자다. 평범함과 거리가 먼 외모와 불안한 눈초리. 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을 그토록 낯설게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그들을 더욱 더 낯선 타자로 몰아넣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어 자신들의 구체적 장애를 돌아가며 독백하는 시간. 그들은 기억력이 떨어지고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굼뜬 자신의 특징을 때론 담담하게 때론 부끄럽게 고백한다. 무작정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하다 눈물을 쏟는 이도 있다.

그들과 우리의 심리적 거리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이어 그들 각자가 준비한 솔로 댄스가 펼쳐진다. 무용수의 세려되고 멋진 춤은 아니다. 하지만 뭉클하다. 지금 여기의 나를 넘어서고픈 몸짓, 아니면 닮고 싶은 그 누군가를 열심히 모방하는 몸짓이다.

직업 배우인 그들은 “기형아쇼”라는 거침없는 자기풍자를 곁들이면서도 “이 공연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나 자신을 연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정곡을 찌른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그들 안에 우리가 있음”을 발견한다. 그래서 더욱 미안하고 고맙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사요나라#장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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