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레스토랑 ‘엘 올리브’는 매달 새로운 메뉴로 바뀐다. 부산과 남해 일대에서 나오는 제철 재료로만 요리하기 때문에 연중 한 가지 요리를 고집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서울 이태원동의 해산물 레스토랑 ‘고사소요(高士逍遙)’의 대표 메뉴는 ‘제철 생선회와 샐러드’다. 어떤 생선회가 나올지는 직접 가 봐야 안다.
매달 바뀌는 것은 백화점의 식품 코너도 마찬가지다. 생선, 농산물 코너 할 것 없이 대표상품이 교체되는 시기가 빨라졌다.
또 다른 변화는 레스토랑에서도 백화점에서도 식재료에 대한 설명이 구구절절 길어졌다는 것이다. 단순히 ‘국내산’이란 말은 안 통한다. 어느 지역에서, 어떤 퇴비를 먹고, 어떤 바람을 맞고 자랐는지까지 들어야 소비자는 관심을 보인다.
이 같은 변화를 관통하는 단어는 ‘로컬푸드(Local Food)’ 운동이다.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시작된 로컬푸드 운동은 환경과 건강을 모두 살리기 위해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그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취지로 생겨난 캠페인이다. 운송 거리를 줄이면 그만큼 이산화탄소를 아낄 수 있고, 가까운 곳에서 난 재료이니 신선함도 보장된다는 얘기다.
해외에서는 반경 50km 이내에서 생산된 농수산물을 지칭하지만 영토가 좁은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땅에서 나는 농수산물로 범위를 넓혀 해석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예전부터 신토불이(身土不二)를 주장했던 우리 조상들이 로컬푸드의 원조인 것 같다.
A style은 봄을 맞아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제철 음식, 로컬푸드를 찾아봤다. 좋은 재료에 관심을 갖게 되면 그 재료를 만드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람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음식이니 몸에 좋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 달마다 바뀌는 메뉴… 요즘 벚굴, 임금님 대접 받아요 ▼
재료
예쁘지 않다. 잘못 만지면 손을 베인다. 언뜻 보면 덕지덕지 조개껍데기가 붙은 어른 손바닥만 한 돌덩이 같다. 이건 석화일까?
“원래 굴은 바다에서 나는데…. 이건 민물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서 나오는 ‘벚굴’이에요.”
박재수 갤러리아백화점 수산물 바이어가 말했다. 그는 지난달 전남 광양에서 갓 캐낸 벚굴을 한가득 가져왔다. 벚꽃이 필 무렵 섬진강과 광양 바다가 만나는 물속에 들어가면 굴이 먹이를 먹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있는데 그 모습이 벚꽃이 핀 것처럼 하얗고 아름답다고 해서 벚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반 굴보다 5∼10배 크며 달콤한 고단백 상품으로 미식가들 사이에서 오직 3월과 4월 초에 산지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제철 음식으로 통한다. 못생겼고 굴끼리 서로 얽혀서 한 덩이가 됐지만 스토리가 있는 귀한 벚굴이란 말에 인기가 많은 편이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완판’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백화점은 ‘꾸러미 농산물’과 ‘서브스크립션(정기구독) 서비스’를 합친 서비스를 시작했다. 일년 회원에게 계절마다 가장 싱싱한 재료를 직접 배송해 주는 서비스다. 이달에는 제주 건고사리, 성원 연잎가루, 제주 어린잎미역, 제주 김민수 된장, 국령애 양파장아찌를 담아 고객들에게 보냈다.
롯데마트는 판매지에서 9∼20km 이내에서 수확한 진짜 로컬푸드 농산물 3가지를 이달부터 팔기로 했다. 경기 남양주 소재 전용 하우스에서 기른 시금치, 열무, 얼갈이 세 가지를 경기 구리, 서울 잠실, 송파, 강변점 등 4개 점포에서만 판다.
퓨전
서울 이태원 뒷골목에 자리한 ‘고사소요’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곳이다. 1960년대 낡은 주택, ‘뜻 높은 선비가 거닐다’라는 뜻의 레스토랑 이름, 이탈리안 같기도 하고, 일식 같기도 한 ‘같기도’풍 음식.
“해산물 식당이라고 봐주세요. 회를 먹으려면 횟집이나 이자카야에 가야 하는데, 그런 거 말고 신선한 과일과 해산물을 함께 요리하고 먹고 싶어서 만든 식당이에요. 절대 냉동 재료는 안 쓰고, 그날그날 새벽에 노량진시장에서 사온 것만 씁니다.”
김혜림 대표는 원래 액세서리 디자이너라고 한다. 지난해 이태원의 옛 주택을 보고 마음을 빼앗긴 김 대표가 서울 마포구 상수동 캘리포니아 퀴진 ‘델마’의 김미영 셰프와 의기투합해 고사소요를 만들었다. 김 대표는 “이제 음식을 국적으로 나누는 시대는 갔다. 가장 좋은 것은 그때 나는, 그 주변에서 오래 여행하지 않은 재료를 잘 요리하는 것”이라며 “제철 재료의 신선함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파스타도, 버거도 만든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이 그런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고사소요의 봄 메뉴는 제철 생선회와 샐러드(2만1000원·2), 돌문어와 병아리콩 샐러드(1만9000원) 등이다. 계절마다 바뀌는 제철 생선회는 인기 메뉴. 요즘 가면 숭어회를 준다.
양식
“서울도 하루 생활권인데 굳이 서울 갈 필요 있나요. 싱싱한 재료가 가까이 있는 부산이 좋죠.”
부산의 ‘엘 올리브’ 레스토랑 양경숙 대표가 “서울에서도 먹으러 온다”며 이같이 말했다. 엘 올리브는 건축 디자인 기업을 운영하는 고성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부산과 인근 지역의 재료를 이용한 싱싱한 로컬푸드를 선보이고, 새로운 문화공간을 키우고 싶어 2009년 만든 레스토랑이다. 부산 수영강변에 파인 다이닝 ‘엘 올리브 가든’과 캐주얼 다이닝 ‘엘 올리브’ 두 곳을 운영한다.
어차피 부산의 자갈치시장에 가면 로컬푸드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양 대표는 “일반 횟집이나 요릿집 모두 오랫동안 잘하고 계신 곳이 정말 많다. 우리는 식사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공연과 파티에 어울리는 양식을 부산 재료로 만들어 보려 했다”고 말했다.
이달에 선보이는 시즌 메뉴도 독특하다. ‘감자 비스킷, 렌틸콩, 대파 크림폼을 곁들인 남해 아귀’(코스 전체 가격 7만 원)는 부산 인근의 철마산 대파를 이용해 크림폼을 만들고, 깊은 남해 바다에 사는 아귀로 애피타이저를 만들었다. ‘각종 야채와 대저 토마토를 곁들인 미네스트로네 수프’(코스 전체 가격 7만 원)에는 부산 대저 지역의 토마토가 들어갔다. 기장 생멸치를 곁들인 스파게티니(2만2000원·3)에는 수입산 이탈리아 엔초비 대신 기장 지역의 싱싱한 생멸치가 들어 있어 인기 만점이다. 기장 지역 미역으로 만든 미역 피자 등도 인기를 얻은 바 있다.
호텔 양식당에도 로컬푸드 바람이 불고 있다.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베로나’에는 전남 장흥에서 직배송한 매생이를 담뿍 넣은 이색 크림 파스타 ‘매생이 크림파스타(4)’가 있다. ‘바다의 솜사탕’이라 불리는 매생이를 마늘, 양파 등 각종 야채와 함께 올리브 오일에 볶아내 비린내 없이 고소하면서도 은은한 바다 향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 매생이는 인체에 필요한 필수 5대 영양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으며, 원기 회복과 피부미용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어 맛뿐 아니라 건강까지 함께 챙길 수 있다. 가격은 2만2000원.
뷔페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뷔페 레스토랑 ‘아리아’에서는 봄나물 비빔밥(5)을 선보이고 있다. 울릉도에서 재배한 명이나물도 맛볼 수 있다. 디너 기준 9만2000원.
제주 신라호텔의 뷔페 레스토랑 ‘파크뷰’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제주도에서 난 싱싱한 특산물로만 구성된 보양식 ‘불로탕(8)’이다. 모든 육해공 재료가 제주도에서 난 로컬 재료들로 구성돼 있다. 한라산 중턱 소나무 밑에서 재배한 표고버섯, 성산읍에서 채취한 전복, 제주산 토종 흑돼지와 닭, 한우 등을 스팀으로 고아주면서 정성껏 쪄낸다. ‘불로탕’ 외에도 제주 강정, 무릉에서 재배한 친환경 채소, 마라도 인근과 모슬포항에서 당일 제공받는 활어회 등 신선한 로컬푸드를 가공한 요리들을 내놓고 있다. 디너뷔페 가격은 어른 8만5000원.
한식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의 아시안 요리 전문점 ‘아시안 라이브’는 대관령에서 공수해온 한우만 사용하는 육회 비빔밥을 선보이고 있다. 대관령은 청정한 산과 깨끗한 물이 풍부한 데다 일교차가 적당해 최상품 한우를 생산하기 좋은 장소로 손꼽히는 곳. 배한철 총주방장은 “셰프들이 직접 식재료를 찾아 신안, 목포, 횡성 등 전국을 여행하고 다닌다”며 “대관령 한우 역시 청정지역을 직접 방문해 찾아낸 것”이라고 말한다. 7만3000원.
쉐라톤그랜드워커힐의 한식당 ‘온달’은 남해 현지에서 갓 잡은 싱싱한 제철 해산물로만 메뉴를 구성한다. 30일까지 런치메뉴로 진행되는 ‘남해미각 여행’ 프로모션에서는 경상도 남해안 특산물인 신선한 멍게, 건대구, 조피볼락, 기장미역 등을 직접 공수해와 선보인다. 반상 코스에서는 효소 소스를 사용한 봄나물 냉채와 가자미 소금구이, 멍게유곽 비빔밥, 건대구 미역국, 남해 특산 젓갈을, 정찬 코스에서는 봄나물 냉채와 모둠숙회, 해물지짐이, 조피볼락 양념구이, 조방불고기 낙지볶음, 건대구탕 등을 맛볼 수 있다. 가격은 각각 5만 원, 8만 원. 5월부터는 서해안 꽃게 프로모션을 계획하고 있다.
일식
플라자호텔의 일식당 ‘무라사키’에서는 남해안 해삼알과 섬진강 하구의 굴, 충남의 새조개 등 제철 국내산 식재료를 메인으로 한 ‘에도마에 코스(6)’를 선보이고 있다. 산란기에만 제한적으로 채취할 수 있어 해삼내장(고노와다)보다 더 귀한 고급 식재료로 손꼽히는 해삼알(고노코)은 남해에서 직배송받아 장시간 건조한 뒤 쥐포 형태로 김, 새조개와 함께 제공한다. 섬진강 하구의 ‘벚굴’은 튀김 요리로 내놓는다. 충남 홍성 지역의 특산물로 유명한 새조개는 다른 조개류와 함께 냄비 요리로 제공한다. 점심 15만 원, 저녁 19만 원.
중식
그랜드하얏트 서울의 중식당 ‘더 차이니스’는 국내산 오리로 정통 베이징식 오리 요리(7)를 선보인다. 최소 2, 3일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이 메뉴는 충북 음성 진천과 경기 안성에 위치한 농장에서 직접 기른 국내산 오리로 만든 요리만 제공한다. 부드러운 밀전병에 베이징 오리 한 점과 파, 오이채를 넣고 호이신 소스를 곁들이면 재료 본연의 향과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 전극인 주방장이 특유의 비법으로 만든 홈메이드 호이신 소스를 함께 제공한다. 가격은 2, 3인 기준 9만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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