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컬렉션으로 유명한 ‘디스퀘어드2’의 쌍둥이 듀오 디자이너 딘 카튼과 댄 카튼이 최근 짧은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마돈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 유명 뮤지션들의 무대 의상을 디자인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벤투스, FC 바르셀로나 등 유명 축구팀을 위한 옷도 디자인했다. 쌍둥이라는 ‘선천적 운명’에다 오랜 시간 같은 길을 걸으며 한곳을 바라보게 된 ‘후천적 운명’까지 더해진 이들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떼어 놓을 수 없는(Inseparable)’쯤 될까.
기자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형 딘이 재치 있게 대답하고 나면 동생 댄은 재빨리 자신의 휴대전화 사진 폴더를 뒤져 딘의 말을 뒷받침할 ‘인증샷’을 보여줬다.분명 두 사람과 인터뷰를 했는데 한 사람과 대화한 듯한 느낌이 들 정도. 이처럼 두 사람은 영혼을 공유하는 형제이자 동지이자 ‘절친’인 듯했다. 》
지난달 26일 A style과 만난 이들은 친절하고, 발랄하고, 수다스러웠다. 한 시간 반 남짓 진행된 인터뷰를 노트북에 받아 치는 기자의 손가락이 다 얼얼해질 정도.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49세)가 무색하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젊은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한국 방문은 처음이라고 들었어요. 소감이 어떤지….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도 봤고, 한국에 대해서도 들은 게 꽤 있지만 이제야 오게 됐어요. 일정이 짧아서 아쉽네요. 지금 사실 시차 적응이 어려워 해롱대고 있어요. 사실 매주 비행기를 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출장이나 여행을 자주 가요. 영국서 살고 회사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고, 가족은 캐나다에 있거든요.”
―일란성 쌍둥이 중에서도 유독 닮은 것 같아요.
“정말요? 그런 말 싫어하는데. 하하. 자세히 보면 좀 달라요. 형인 제가 좀 더 얼굴이 길고 뾰족하고, 동생 댄은 좀 더 얼굴이 둥글고 살집이 있잖아요.”(딘)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네. 겨우 6분 일찍 태어난 형이지만 형 말이 맞다고 해야겠죠? 제가 좀 더 살이 쪘다는 얘기 말이에요.”(댄)
그러고선 댄은 곧바로 휴대전화 폴더를 뒤져 어릴 적 사진을 보여줬다. 쌍둥이라 늘 같은 옷을 입었다는 이들의 어린 시절 모습은 더욱 닮아 있었다.
―캐나다 토론토 출신이시죠.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아버지는 이탈리아 출신, 어머니는 영국 출신이지만 부모님은 완전히 북미식으로 저희를 키우셨어요. 저희가 아홉 남매 중 막내예요.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어린 나이에도 직접 밥을 차리고 집안을 정돈하는 등 살림을 했어요. 그래선지 또래보다 조숙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함께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유명인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조용한 동네에 살았는데 열세 살 때인가…. 우연히 제리 홀이라는 유명 모델과 동네에서 부딪혔어요. 처음엔 그가 모델인 줄 모르고 코트가 정말 멋지다고 칭찬했죠. 그러다 친해져 함께 클럽도 다녔는데 모델, 헤어드레서 등 패션계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패션에 눈뜨게 된 것 같아요.”(딘)
“아, 걱정 마세요. 당시 캐나다에는 청소년도 입장할 수 있는 야간 클럽이 있었어요. 또래 친구들이 시시하게 느껴졌던 탓에 학교 친구가 딱히 없을 때였어요. 방과후 이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죠.”(댄)
―학창 시절은 어땠나요.
“당시 캐나다의 중고교에선 남자는 목공예, 기계 등 기술 과목을 배우고 여자는 바느질, 요리 등 가정 과목을 배워야 했어요. 취향이 아닌 성별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는 게 정말 싫었어요. 목공예 수업 때 나무를 깎아 스틸레토 힐(굽이 가늘고 긴 하이힐)을 만들었죠. 선생님이 결국 수업을 그만 들으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중간에 미국 애리조나 주로 학교를 옮겼고 거기선 의상디자인 관련 수업을 들을 수 있었어요. 이때 저희의 첫 패션쇼를 열었죠. 미식축구팀 선수들과 치어리더들을 쇼 모델로 올리면서 이들과 친해진 덕에 저희를 보는 친구들의 시선이 ‘이상한 애들’에서 ‘재밌는 애들’로 바뀌었어요. 패션이 우리를 구해준 거죠.”
댄이 다시 잽싸게 찾아준 사진 속에선 1983년 이들이 열었던 첫 패션쇼 포스터가 담겨 있었다. 학생답게 참신한 느낌의 흑백 포스터였다.
과거 얘기가 나올 때마다 꺼내드는 댄의 휴대전화 속에는 그의 인생 전체가 담겨 있는 듯했다. 사진이 몇 장이나 들어 있는지 묻자 댄은 “남자친구가 정리벽이 있어 연대별 과거 사진, 셀러브리티와 찍은 사진, 여행 사진 등을 폴더별로 정리해준다”고 했다. 딘은 곁에서 “덕분에 옛날 일을 잊어버릴 틈이 없다”며 웃었다.
―본격적으로 패션 업계에 입문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나요.
“열아홉 살 때, 뉴욕의 한 패션스쿨 여름 강좌를 들었어요. 등록금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 6주만 수업을 듣고 캐나다로 돌아왔죠. 그 패션스쿨에서 한 일본계 캐나다인 친구를 만났는데 그 아버지가 유명 패션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저희의 잠재력을 보고 선뜻 채용해주셨고, ‘신선한 에너지를 불어넣어 달라’는 미션을 받았죠.
다행히 성과가 좋아 채용 후 6개월 만에 홍콩에 1등석 비행기를 타고 출장 갈 정도로 좋은 대우를 받았어요. 그 회사에서 6년간 일하면서 사장님을 멘토로 모신 것이 정규 패션스쿨을 몇 년 다니는 것 이상의 실력을 쌓을 수 있게 했어요.”
―이후 밀라노로 근거지를 옮긴 이유는 뭔가요.
“저희가 스물여섯 살 때였어요. 안정된 직장도 있고, 각자 사랑하는 연인도 있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로 떠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죠. 그래도 글로벌 패션사업을 하기에 캐나다는 좁은 느낌이었고(이들은 일부러 잘난 척하는 거라는 티가 나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전을 하지 않고 정체되면 평생 후회할 거라는 직감이 들었어요. 3년간 유럽에서 지내면서 분위기를 익혔고 서른 살에 저희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디스퀘어드2’의 브랜드 역사에서 뮤지션들을 떼어놓을 수 없겠죠.
“가장 처음 함께 작업했던 뮤지션이 마돈나였으니, 운이 좋았죠. ‘돈 텔 미’라는 뮤직비디오 의상을 만들었고 2002년 드라운드 월드 투어에서 마돈나와 댄서들이 입을 의상 150벌을 디자인했어요. 이후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스트립트 월드 투어 2003’의 무대 의상을 디자인했어요. 아길레라는 2005년 저희 남성 컬렉션 런웨이에 서주기도 했죠. 참,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리애나의 의상도 디자인했고요.”
―쌍둥이 중에는 일부러 서로 완전히 다른 길을 가면서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은데, 두 사람은 늘 붙어 다녀야 하니 어떤 느낌인가요.
“저희가 쌍둥이로 태어난 건 서로에게 가장 큰 축복이었다고 생각해요. 딘은 제게 안전장치이자, 안식처이자, 울타리예요.”(댄)
“(우는 시늉을 하며) 아, 이럴 땐 눈물 한 방울 주르륵 흘려야 하는 거죠? 제게도 댄은 영원히 함께할 존재죠.”(딘)
A style과의 인터뷰가 끝날 무렵 ‘착한 몸매’로 유명한 가수 지나가 이들을 직접 찾아와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평소 이들의 팬이었다는 지나는 인터뷰가 끝나기를 기다려 마치 사춘기 팬처럼 설레는 표정으로 이들과 만났다. 국경을 넘어 한국 뮤지션의 마음까지 빼앗은 이들은 스타 팬이 많은 비결을 묻자 쿨하게 답했다.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들어야죠.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게 디자이너들의 역할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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