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피부, 차가운 몸 그리고 빠져나올 수 없는 나쁜 남자의 매력. 스크린을 넘어 뮤지컬 무대에서도 뱀파이어의 유혹이 시작됐다.
2010년 대학로 소극장에서 1인 모노극으로 시범공연을 했던 ‘마마, 돈 크라이’가 2인극으로 다시 돌아왔다.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지만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말 한마디 걸지 못하는 물리학자 ‘프로페서 V’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그는 사랑을 이루기 위해 타임머신을 발명해 드라큘라 백작을 찾아간다. 백작은 프로페서 V에게 뱀파이어의 치명적인 매력을 선물한다. 그 후 프로페서 V는 여성의 사랑을 한 몸에 받지만 보름달이 뜰 때마다 한 명씩 여성을 살해해야만 하는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마마, 돈 크라이’에서 ‘드라큘라 백작’과 ‘프로페서 V’로 열연하고 있는 고영빈과 송용진, 두 뱀파이어를 만났다. 뱀파이어라는 느낌보다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친오빠’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영빈은 과묵하지만 도움의 손길을 줄 것 같은 든든한 첫째 오빠, 송용진은 동생들과 장난치기 좋아하는 개구쟁이 둘째 오빠 같았다.
Q. 공연의 반응이 뜨겁다. 잘 되고 있는 것 같다.
송용진 : 창작공연이고 초연이라 우려를 했다. 초연 전에 시험적으로 트라이아웃 공연을 했다. 모노(1인극)에서 페어(2인극)로 바뀌었다. 초연 공연을 더 좋아한 분들도 있었을 거라 생각해 최대한 그들의 기호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고영빈 : 뮤지컬에서 뱀파이어를 멋있게 다룬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뱀파이어가 무거운 역할이라 무대에 어울리지 않으면 어쩔까 걱정도 했는데 관객들이 매력적으로 봐줘 감사하다. 막을 열고 자신감이 더 생겼다.
Q. 뱀파이어는 주로 영화에서 다뤄졌다. 뮤지컬에서는 보기 힘든 뱀파이어 스토리다. 참고한 영화 캐릭터가 있나.
고영빈 :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봤다. 그 영화를 안무선생님과 참 많이 봤다. 그리고 연출자가 추천해준 영상을 많이 봤다. 피가 많이 나오거나 인간의 잔인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영상이었다.
송용진 : 해부학 영상을 봤다. 연출자가 해부학 영상을 줄 때 겁을 줬다. 워낙 거부감이 없던 나라 잘 봤다.(웃음) 시체가 무섭진 않았고 시체 해부자가 아무 감정 없이 시체를 자르는 모습이 잔인했다. 고기 덩어리 자르듯 자르는데 연출자가 왜 보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뱀파이어는 생존을 위해서 인간의 목을 물지 않나. 우리가 밥을 먹듯이 그들은 피를 마셔야 하니까. 우리는 잔인하다고 생각하지만 뱀파이어는 살기 위해 피를 마시는 거다. 해부자가 시체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부하듯이 나 역시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무는 연기를 해야 했다.
Q. 송용진은 인간에서부터 뱀파이어가 되는 과정을 표현했다. 인터미션도 없고 극 중 쉬는 시간도 없다. 무척 힘들 것 같은데.
송용진 : 집중력을 잃지 않은 게 가장 중요하다. 1시간 40여분을 집중하고 있는 게 어려운 일이다. 또, 감정 연기를 할 때 관객에게 그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진심을 다해 연기하려고 한다. 관객들은 배우들이 진심인지 아닌지 다 안다. Q. ‘프로페서 V’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 ‘메텔’이다. 특이했다.
송용진 : ‘은하철도 999’가 시간 여행을 하는 내용이지 않나. ‘프로페서 V’도 시간여행을 하니까 그의 이상형의 이름을 ‘메텔’이라고 지은 것 같다.
고영빈 : 다른 이름을 붙이면 웃길 것 같다. 빨간 머리 앤, 순이, 캔디.(웃음)
Q. 두 사람의 호흡은 어떤지 궁금하다.
송용진 : 영빈 형과 공연하는 날은 투정 부리는 날이다. 이제 나도 뮤지컬 배우가 된 지 10년이 넘어 챙겨줘야 할 후배가 많다. 그런데 영빈 형과 있으면 의지가 많이 된다. 형을 바라보기만 해도 든든한 기분? 그런 기분이다.
고영빈 : 10년 전 ‘그리스’에서 용진이를 처음 봤다. 그 때 당시 용진에게 선입견이 있었다. 음악·글·연기 등 다재다능 했지만 가벼움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함께 하며 선입견이 깨졌다. 더 진지해졌고 대본 안에서 답을 찾으려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제는 용진이를 완벽하게 믿는다. 그런 믿음이 생기면 무대에 설 때 더 안정되고 좋은 공연을 할 수 있다. 요즘 새로운 송용진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송용진 : 우리는 서로를 믿고 있군.(웃음)
Q. 선배의 말을 들어보니 어떤가. 더 진지해진 것 같나.
송용진 : 원래 무대에서 장난치는 것을 싫어한다. 무대라는 곳이 무서운 이유가 반응이 바로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객석 분위기가 안 좋으면 애드리브를 해서 분위기를 띄운다. 그렇게 간단하게 사람들을 웃길 순 있겠지만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연은 대본연습, 리허설, 프리뷰 공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 과정 가운데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애드리브를 할 경우 그런 것이 깨질 경우도 생긴다. 코미디를 하더라도 대본 안에서 해야 한다. 객석 분위기는 배우의 역량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공연할 때마다 관객과 싸운다고 생각하고 임한다. ‘마마, 돈 크라이’경우는 300석이니까 300명하고 싸우는 거다.
고영빈 : 싸우려면 힘들겠다.(웃음)
송용진 : (웃음)지지 않기로 했다. 관객의 기에 눌리면 내가 그들을 휘어잡을 수가 없다. ‘헤드윅’을 경희대에서 공연할 때 4000명 관객과 싸웠다. 그런데 내가 이긴 것 같았다. 무대에서 전지전능한 신처럼 즐겼으니까. 배우하며 가장 즐거운 일이다. 몇몇 선배들 때문에 이런 마음을 갖게 됐다. 애드리브 하고 노력하지 않는 선배들이 있었다.
고영빈 : 그 사람들 리스트 좀 작성해봐.(웃음)
송용진 : 그와 반대로 영빈 형은 준비를 제대로 한다. 형 경력에 부단히 노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 체중 감량도 그렇고. 10년 만에 호흡을 맞췄지만 영빈 형은 한결같이 노력하는 배우다. 내가 본 받아야 한다.
Q. 고영빈은 뱀파이어 역할 때문에 체중 감량을 했다고 들었는데.
고영빈 : 야채만 먹고 살았다. 외형적으로 날카롭고 신비감을 주기 위해서 체중감량을 시작하게 됐다. 의상도 전체적으로 몸에 맞게 제작됐다. 그래서 보디라인을 만들기 위해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았다. 연습할 때는 정말 풀만 먹고 한 달 반을 지냈다.
송용진 : 모든 뱀파이어들이 체중감량을 하고 있다. 영빈이 형 팬들이 샐러드를 많이 준비한다. 연습할 때 야채만 먹는 뱀파이어들을 보면 마음이 짠했다.
고영빈 : 체중감량을 하면 가끔 일반 음식을 먹어도 괜찮다. 그래서 밥을 좀 먹으려고 하면 팬들이 그날 샐러드를 보내주신다. 계속 감량하라는 하늘의 뜻인가.(웃음)
Q. 이번에 공연을 보니 고영빈은 의외로 여장이 참 어울린다. 다음에는 ‘라카지’에서 ‘앨빈 자자’를 해보는 건 어떨까.
고영빈 : 전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아무도 내가 여장을 하면 예쁘게 보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마마, 돈 크라이’를 본 공연 관계자가 다음엔 ‘앨빈 자자’역을 추천했다. 그런데 이 목소리로 앨빈 자자는 안 된다. 여장을 하니 은근 재미있었다. 액세서리와 의상 등에 신경을 많이 썼다. 액세사리를 사려고 동대문 패션거리를 3번 돌아다녔다. 빨간 하이힐은 이태원에서 직접 맞췄다. 그런데 하이힐만 신었을 뿐 묘한 재미가 있더라. 다음엔 더 센 걸로 가봐야겠다. 그런데 그럴 기회가 올까. 하하. Q. 고영빈은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도 출연한다. 김태희 오빠로 나오는데.
고영빈 : 그렇다. 아직 김태희를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인연인지 공교롭게도 공연장에서 자주 만났다. 김태희가 공연을 굉장히 좋아한다. ‘라카지’때와 ‘금발이 너무해’할 때 공연 보고 우리 배우들과 사진도 찍었다. 나는 먼발치서 바라봤다.
송용진 : 부럽다. 촬영장에서 만나면 사인 한 장만 받아 달라. 우리 공연도 초대해라.
고영빈 : 요즘 미치겠다.(웃음) 남배우들은 김태희를 초청하라 하고 여배우들은 유아인을 데리고 와달라고 한다. Q. 송용진의 올해 계획은 무엇인가.
송용진 : 가을에 영화 촬영에 들어갈 것 같다. 이번에는 주인공이다. 그런데 영화판 현실이 촬영한다고 말해도 엎어질 때도 많아서 언제 들어갈지는 정확하지 않다. 올해는 앨범도 낸다. 5월에 솔로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공연 스케줄도 올해까지 다 정해져 있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하니까 좀 벅차다. ‘두결한장’을 찍을 때도 3일 밤새서 촬영하고 공연하러 가고 공연 마치면 새벽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촬영장에 갔다.
고영빈 : 대단하다. 나는 여유로운 삶이 좋다. 일이 끊이지 않지만 여유롭게 살고 싶다. 바빠지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 지금도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마마, 돈 크라이’와 스케줄이 겹쳐서 겁이 난다. 겹치면 두 작품에 폐를 끼치는 것 같다. 요즘 매니저와 머리를 싸매고 있다.
송용진 : 나는 순발력이 없어서 형처럼 드라마는 하지 못한다. 오히려 호흡이 긴 영화가 좋다. 40대가 되면 영화 연출자로 나설 생각이다. 이미 써놓은 시나리오도 있다. 영화를 몇 편 찍다보니 돌아가는 방식을 알겠다.
Q. 뮤지컬 배우, 가수, 연출자까지…이쯤 되면 아이큐가 궁금한데. (웃음)
송용진 : 보통이다. 워낙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내 꿈은 앤디 워홀 같은 종합예술인이다. 음악도 하고 영화도 하고…. 외국에서는 종합예술인이 인정받는데 국내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좋은 선례를 만들고 싶다.
고영빈 : 진짜 천재 같은데….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대에 서는 게 무섭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공연을 마치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무대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 이번 기회에 머릿속으로 공연에 대한 전체적인 것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70세가 되어도 무대에 서는 사람이 되고 싶다. 또, ‘무대’라는 곳이 아무나 설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 무대가 연기자가 데뷔하는 등용문이 아니라 완벽해졌을 때 설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싶다.
송용진 : 요즘 배우들이 무대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젊었을 때 무대는 즐거운 곳이었다. 내가 잘나서 서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언제나 준비하고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곳이었다.
Q. 마지막으로, ‘마마, 돈 크라이’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송용진 : ‘마마, 돈 크라이’가 큰 메시지가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운명론’이라는 재미있는 주제가 숨어있다. 음악도 좋고 극도 좋으니 재미있게 감상했으면 좋겠다.
고영빈 : 뭘 느끼기보다는 하루를 정화시키는 공연이 되면 좋겠다. 괴짜 뮤지컬을 재미있고 편안하게 즐기다 가셨으면 좋겠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사진제공|설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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