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영국 번역극 ‘에이미’에서 영화감독인 도미닉은 “연극에선 모든 게 느려 터졌다”면서 연극 볼 때의 심정을 이렇게 토로한다.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독일 번역극 ‘황금용’(윤광진 연출)은 이런 말이 무색할 정도로 숨 가쁜 점프 컷의 연속이다.
첫 장면은 유럽 어느 도시의 황금용이란 이름의 동남아 간이식당에서 5명의 아시아인 요리사가 쏟아지는 주문을 받으며 요리하느라 여념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곧 연극 속 공간은 식당이 위치한 주상복합건물의 이곳저곳을 넘나든다. 여기에 개미와 베짱이 우화도 끼어들고, 남미에서 유럽으로 날아오는 비행기 안, 중국에서 불법이민 온 젊은 요리사의 고향으로도 건너뛴다. 90분 공연시간에 48개의 장면이 숨 가쁘게 펼쳐진다.
어떻게? 5명의 요리사가 거의 텅 빈 무대에서 17명의 배역을 소화하면서 변신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이때 배우들이 맡는 배역은 남녀와 노소의 경계마저 무너뜨린다. 가장 늙은 남자 요리사가 젊은 스튜어디스가 되고, 늙은 여자 요리사가 열아홉 살 앳된 소녀로 바뀌는 식이다.
배우들의 화술도 고전적 연극문법과 다르다. 각각의 배우들은 3인칭 관점의 해설자와 1인칭 관점의 배역의 대사를 뒤섞어 쏟아낸다. 심지어 배우의 행동을 지시하는 지문과 대사의 경계까지 허문다.
독일 극작가 롤란트 시멜페니히(46)가 2009년 발표한 이 작품은 전통적 연극문법을 무너뜨리면서도 연극적 묘미는 한껏 살려낸다. 배우들은 시공간과 의상의 구애를 받지 않은 채 사실주의 연기와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를 동시에 실현한다. 이호성 남미정 이동근 한덕호 방현숙 다섯 배우의 자유자재의 화술과 앙상블이 감탄스럽다. 파편적으로 보이던 이야기도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를 넘나들며 착취와 피착취의 불평등한 관계에 얽매인 현대인의 실존적 고뇌를 확 낚아채는 묘미를 안겨준다. 영화의 모자이크이론을 연극적으로 구현한 느낌이다
2011년 외모지상주의를 풍자한 독일번역극 ‘못생긴 남자’로 주목받은 공연제작센터가 야심 차게 내놓은 두 번째 독일 현대극이다. 14일까지 1만5000∼3만 원. 010-4806-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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