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중계 징크스라는 게 있다. 생중계로 경기를 시청할 때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나 팀이 꼭 진다는 징크스다. 이런 분들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의 생중계 시청은 늘 대형 참사를 부른다고 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투혼을 불사르는 태극전사에게 힘을 보태려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 응원을 감행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낭패를 보고 만다는 것이다. 선제골을 넣고도 역전패하는 것은 기본. 축구는 5-0, 야구는 완봉 패. 이런 불길한 징크스가 단체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TV 앞에 있기만 하면 완벽한 연기를 펼치던 김연아 선수도 엉덩방아를 찧고, 손연재 선수는 곤봉을 떨어뜨리고 만다.
이쯤 되면 아무리 생중계로 경기를 보고 싶어도 꾹 참고 녹화중계 시간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응원 팀이나 선수가 패하면 그게 모두 자신의 탓 같기 때문이다. 열심히 응원하고도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생중계 시청은 금기가 돼버린 지 오래다.
물론 완전히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신이 생중계로 봐야 응원 팀이 승리하는 것이다. 이 징크스가 있는 사람들은 만약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생중계 시청을 소홀히 했다가는 응원 팀의 패배가 불 보듯 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본방 사수’에 나선다.
징크스는 비과학적 미신
데이비드 러셀 감독의 2012년 작 ‘실버라이닝 플레이북’도 이런 징크스를 다룬다. 실버라이닝은 먹구름의 은빛 가장자리를 의미한다. 먹구름이 해를 가려도 은빛 가장자리는 언젠가 해가 다시 밝은 빛을 비출 것이라는 한 가닥 희망을 갖게 만든다. 즉, 실버라이닝은 ‘밝은 희망’이라는 뜻이다. 플레이북은 미식축구 팀의 공수 작전을 그림과 함께 기록한 책이다. 그러니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희망을 찾기 위한 작전을 구체적으로 그려놓은 책이라고 하겠다.
이 영화에도 지독한 생중계 징크스를 가진 사람이 등장한다. 주인공 팻(브래들리 쿠퍼)의 아버지 솔리타노(로버트 드니로)가 바로 그다. 솔리타노의 가족은 모두 미식축구팀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광팬이다. 그는 아들 팻이 경기를 보는 날에는 이글스가 반드시 승리한다고 믿는다.
그는 아들이 가진 승리의 기운이 이글스에게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 심지어 리모컨까지 텔레비전을 향해 가지런히 놓는다. 더 좋은 방법은 팻이 한 손에는 이글스의 엠블럼이 새겨진 손수건을 쥐고, 다른 손에는 리모컨을 들고 텔레비전을 향해 있는 것이다. 팻이 바쁘면 팻의 친구라도 상관없다. 팻과 친구가 연결돼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가 미식축구 경기의 승패에 돈을 건다는 것이다. 드디어 운명의 날. 솔리타노는 일생일대의 도박에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건다. 가족들이 운영할 식당을 열기 위해 모아뒀던 거의 전 재산을 이글스 승리에 건 것. 이런 무모한 결정의 배경에는 팻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는 팻이 경기를 지켜보도록 하면 이글스의 승리는 떼어 놓은 당상이라고 확신한다.
가족의 만류에도 그의 믿음은 꿈적도 하지 않는다. 솔리타노는 아들을 설득해 경기장에 가도록 한다. 아무래도 경기장에서 직접 좋은 기운을 불어넣는 것이 승리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서였다. 팻의 경기 관람이 이글스가 승리할 확률을 1%라도 높일 수 있는 걸까. 물론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솔리타노의 가족들이 말하듯이 징크스는 미신일 뿐이다.
징크스를 적극 활용하라
하지만 그런 믿음을 가진 솔리타노가 실제 경기를 뛰는 이글스 선수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누군가가 ‘승리의 징크스’를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은 실제 경기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독일 쾰른대의 리산 다미치 연구팀이 2010년 학술지 ‘심리과학’에 발표한 실험은 비과학적 믿음이 실제 행동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사람들은 자기 손에 있는 골프공이 행운의 공이라고 믿었을 때(희망 조건) 평범한 공이라고 생각했을 때(비교 조건)보다 퍼팅 성공률이 더 높아졌다. 또한 자신만의 반지, 인형, 조약돌 등 행운의 물건을 가지고 있을 때 과제를 훨씬 잘 수행했다. 이 연구에서는 여덟 개의 알파벳 철자를 이용해 최대한 많은 단어를 만드는 과제가 주어졌다. ‘행운 조건’ 참여자들은 단어를 46개나 만들었지만 ‘비교 조건’ 참여자들은 31개를 만드는 데 그쳤다.
자신에게 행운이 있다는 믿음은 ‘자기 효능감’을 증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자기 효능감은 자신이 성공에 필요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자신에게 행운이 따를 것이라는 믿음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도 강하다. 많은 연구는 자기 효능감이 강하면 과제 수행능력이 더 커진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것은 자기 효능감이 큰 사람들이 더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더 끈기 있게 지속적으로 노력하기 때문이다.
타이거 우즈, 마이클 조던, 세리나 윌리엄스는 모두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징크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즈는 토너먼트에서 제일 중요한 경기가 벌어지는 날 빨간색 상의를 입는다. 조던은 재학 시절부터 입었던 노스캐롤라이나대 농구팀의 파란색 반바지를 NBA 유니폼 아래에 받쳐 입고 경기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윌리엄스는 테니스 대회 토너먼트 내내 같은 양말을 신고 경기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자신의 징크스가 경기력에 실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제 자신만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징크스를 활용한 작전을 짜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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