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이 주어진 역할을 맡으며 수많은 어려움에 부딪히지만 이 만큼 어려운 역이 또 있을까. 그 이름은 신의 아들 지저스(Jesus·예수)다.
지저스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7일 전부터의 이야기를 그를 배신한 제자 유다의 시선으로 그려낸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26일 한국에서 6년 만에 막을 올린다.
이번 뮤지컬에서 지저스 역을 맡은 배우 박은태(32)는 죽음이 다가온 예수가 신의 아들과 인간의 삶에서 고뇌하며 주어진 운명에 괴로워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담는다. 크리스천인 박은태는 지저스를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 신앙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올바른 접근법이었지만 그에게는 무척 이해하기 힘든 접근법이었다.
“저 역시 크리스천이라 지저스를 한번도 인물로서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지저스를 인간으로 접근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죠. 처음에는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하고 성경적으로 접근했죠. 그러다보니 대본이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지저스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인간적’이라는 성경적으로는 굉장히 부정적이잖아요. 감정에 쉽게 휘둘리고 유혹에 빠지는 그런 의미인데요. 굳이 성경적으로 풀이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어요. 세상에는 감정에 휘둘려 사는 사람도 있는 반면 예수처럼 인내하고 참을성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지저스를 접근하니 매력 있고 독한 인물이었다고. 박은태는 “몇 만 명이 그의 말에 매료될 만큼 카리스마가 있었다. 다들 미친 사람들처럼 그를 따랐다. 또 사람들에게 핍박당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야 ‘인류 구원’이라는 자신의 계획이 이뤄진다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의 끔찍한 죽음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지저스는 독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박은태가 “왜 지저스가 ‘수퍼스타’인지 아세요?”라고 질문했다. 이유에 대해 물어보자 그는 명쾌하게 답을 풀어냈다.
“‘수퍼스타’라는 존재는 사람들의 엄청난 추앙을 받잖아요. 하지만 그 기대만큼 실망은 더 크기 마련이에요. 로마제국에 속박된 사람들이 지저스가 우리를 자유케 할 것이라 믿고 있었죠. 그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능력을 가진 분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한순간에 그가 매를 맞는 초라한 사람이 되자 지저스에게 실망한 사람들은 그에게 분노하며 ‘믿음’이라는 감정이 ‘배신’으로 변해버린 거죠. 그래서 지저스는 ‘수퍼스타’라고 표현된 것 같아요.”
그렇게 독한 지저스를 연기하는 박은태의 음악도 독하다. 박은태가 부르는 겟세마네(Gethsemane)는 지저스의 대표곡으로 자신의 운명에 대해 고뇌하는 마음이 절절이 그려진 음악이다. 그래서 저음과 고음이 가파르게 넘나든다. 뮤지컬 음악의 거장 앤드류 로이드 웨버도 자신이 쓴 곡 중 가장 어려운 노래라고 인정했다.
“3옥타브 G코드 정도 올라가요. 모든 감정을 쏟아내는 장면인데 음도 높은데 노래도 길어요. 목 손상도 자주 와서 계속 레슨 받으며 관리하고 있어요.”
그는 “록 뮤지컬이다보니 다른 뮤지컬보다는 음악이 다소 세다. 하지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클래식 록이니 음악도 집중해 들으면 더 즐겁게 극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결혼한 박은태에게 신부의 내조에 대해 잠깐 물어봤다. 그는 웃으며 “나 때문에 아내가 늘 힘들다. 공연 전에는 예민해져 신경을 많이 못 써준다. 그걸 이해하는 아내에게 늘 고맙다”고 말했다.
박은태는 2007년부터 작품을 끝낼 때마다 2~3주간의 짧은 휴식만을 취하며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했다. 이번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6월에 끝내고 ‘엘리자벳’ 연습에 들어간다.
“뭐든지 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언제 지저스를 연기해보겠어요. 하지만 제 한계에 부딪힐 정도로 작품에 참여하진 않고 있어요. 사실 사람인지라 힘들 때도 있죠. 하지만 쇠가 두드려 맞으며 강해지듯 저도 끊임없이 다듬어져서 감을 잃지 않은 배우가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박은태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찾을 관객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저도 관객들을 만날 기대감에 차 있어요. 이 작품이 성경을 배경으로 한 픽션이다 보니 종교적인 극이라고 생각도 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선입견을 배제하시면 더 재미있게 감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성경 이야기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 작품이 4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었던 이유도 아시게 될 거예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사진 |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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