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날아가는 게 들립니다
◇아빠의 손/마하라 미토 글/하세가와 요시후미 그림/김난주 옮김/80쪽·7000원/시공주니어
올봄은 참 수선스럽게 옵니다. 해 비치다가 비 오다가 설핏 눈도 내리고 다시 해 비치길 여러 날 했습니다. 날씨가 그러니 마음도 덩달아 어수선합니다. 이럴 때 따뜻한 보리차 한 모금 목으로 넘기면, 그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편안해집니다. 오늘 소개할 책이 전하는 기분이 그렇습니다. 어수선한 머리를 따뜻하고 편안하게 합니다.
아빠와 딸의 이야기입니다. 아빠는 사고로 머리를 다쳐 시력을 잃었습니다.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지만, 아빠는 눈을 제외한 모든 감각으로 세상을 만납니다. 학교 급식 냄새를 맡고 딸이 돌아온 줄 알고, 공기가 무거워지는 감각으로 비가 올 걸 알아냅니다. 어쩌면 우리가 눈을 뜨고 있어서 눈에만 의지하기 때문에 이런 감각들 전부를 놓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딸은 아빠 옆에서 눈을 감아 봅니다. 여러 가지 소리가 들립니다. 비가 내리고 자동차가 지나갑니다. 눈을 더 꾹 감았습니다. 새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새가 비를 피해 날아가는 게 눈을 감고 있는 아이의 눈에도 보입니다. 아빠가 느끼는 세상을 아이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책엔 그리 거창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책을 펼치면 왼쪽에는 글이 있고 오른쪽에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림책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페이지마다 글자 수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 읽을수록 더 천천히 읽게 됩니다. 설명하지 않는 짧은 문장을 통해 아빠가 느끼는 세계가 조금씩 느껴져서입니다.
책의 뒤표지에 보면, 이 책을 초등 저학년 정도에 권하고 있지만, 그보다 큰 아이들이 천천히 생각하며 읽기를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글씨가 적다고 해서 저학년 책은 아닙니다. 빨리 읽는다고 해서 잘 읽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은 따뜻한 보리차 한 모금 삼키듯,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읽어야 잘 보이는 책입니다.
다 읽고 나면, 조용히 눈을 감고 눈이 아닌 감각으로 주변을 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합니다. 비 그치고 무지개 뜨는 소리, 들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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