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휴식 시간이 끝난 뒤 3막이 펼쳐지자 객석은 ‘일시정지’ 됐다. 국립발레단이 신작으로 선보인 ‘라 바야데르’(9∼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정점은 ‘망령들의 왕국’이었다.
순백의 튀튀(발레리나의 주름 잡힌 치마)를 입은 발레리나 32명이 비탈진 언덕길에서 흔들림 없이 아라베스크(한쪽 다리를 뒤로 들어 올리는 동작)를 하면서 내려와 무대에 가지런히 정렬하자 갈채가 쏟아졌다. 맨 처음 등장한 무용수는 아라베스크를 46번이나 해야 하는 고된 장면이다. ‘백조의 호수’ 2막 백조들의 호숫가 군무, ‘지젤’ 2막 윌리(처녀귀신)의 군무와 더불어 3대 ‘발레 블랑’(흰색 의상의 군무가 인상적인 발레)으로 꼽힌다. 국립발레단의 코르 드 발레 군무진은 장면의 명성에 걸맞은 몫을 충분히 해냈다.
이번 작품은 ‘블록버스터 발레’라는 별명처럼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고른 실력을 갖춘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이 퍼즐을 맞춰가듯 짜임새 있게 전개했다. 김지영(니키아), 이동훈(솔로르), 이은원(감자티)이 주역으로 선 9일 공연은 ‘이은원의 발견’이었다. 카리스마 있는 니키아를 선보인 김지영을 상대로 도도하면서도 매력적인 감자티를 자신감 넘치게 펼쳐 보였다. 2막의 약혼 축하 연회에서 황금신상의 춤과 북춤이 객석을 압도했다. 온몸을 금빛으로 분장한 발레리노 이영도와 열정적으로 북을 두드린 그랑 솔리스트 이수희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라 바야데르’를 꾸준히 공연해 온 유니버설발레단(UBC)의 무대가 화려하고 원색적이었다면 국립발레단은 파스텔 색조 위주의 튀지 않는 세련됨을 지향했다. 국립발레단은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안무한 볼쇼이 버전(모스크바)이고, UBC는 마린스키 버전(상트페테르부르크)을 쓴다. 무용칼럼니스트 한정호 씨는 “다른 버전에 비해 주요 인물들의 감정선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아 산만한 측면이 있지만 향후 보완을 거치면 국립발레단의 주요 레퍼토리가 될 만한 가능성을 지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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