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는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 7위로 선정돼 대학 캠퍼스 건물로는 유일하게 2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사진)의 설계로 2008년 완공된 ECC는 옛날 운동장이 있던 자리에 지하 6층(총면적 6만6000m²) 규모로 파고 들어가 지은 다목적 건물. 모든 시설물을 지하에 넣고 지상엔 산책 공간을 조성했다. “유서 깊은 여대 캠퍼스에 과감하게 개입해 옛 건물과 긴장감을 만들어내면서도 학교 건물의 현대적인 기능을 잘 수용하고 있다”(정다영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닫혀 있던 캠퍼스 공간을 공공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신성우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추천평이 나왔다. 반면 “회칼로 크게 썰어놓은 듯하다” “자본이 학교를 점령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총아다”라는 혹평도 제기됐다. 》
학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이건 본관, 저건 강당, 여긴 운동장, 이런 식으로 시설의 위치와 형태만으로도 그 기능을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화여대 ECC는 학교 건물의 전형을 완전히 깼다.
2000년 이후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학들은 교육 시스템의 변화에 대응하는 유연성과 캠퍼스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옛날 대학이 기품과 독자성을 지닌 여유로운 환경을 선호했다면 이제는 연구나 교육 외에도 상업시설 같은 다원적 기능까지 공존하는 캠퍼스를 원하게 됐다. 품위와 욕망, 교육과 이윤의 불편한 공존을 위해 이질적인 공간들이 필요해지자 캠퍼스 건축은 더욱 중요해졌다. 새로운 건축은 학교의 역사와 공간에 대한 기억이 쌓여 만들어진 정체성을 좀더 선명하고 대중적인 방식으로 되살려야만 했다.
개교 이래 120년간 누적된 공간 부족을 해소하고 21세기 비전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필요했던 이화여대는 국제현상설계를 통해 지금의 ECC를 지었다. 지하 6층 건물인 ECC에는 ‘남한 최대의 지하 캠퍼스’ ‘삼성동 현대백화점을 통째로 파묻은 규모’라는 설명이 따라 붙는다. 정문 광장과 기존 캠퍼스의 레벨 차를 잇느라 기울어진 지붕 아래 공간은 지하 1층부터 시작되고 아래로 내려가면서 점점 넓어진다. 지하 공간엔 강의실과 도서관은 물론이고 영화관 레스토랑 카페 같은 상업시설이 혼재한다. 가운데 커다랗게 비워놓은 외부 광장과 대형 계단, 지붕 위의 정원은 캠퍼스 건물들을 서로 연결하는 동시에 모든 시설물의 지하화로 인한 건물의 부재로 진귀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기존 캠퍼스를 재해석하고 상업과 문화 기능을 추가해 구축해낸 이 결과물은 교묘한 건축인 동시에 거대한 조경이다. 이런 ‘풍경으로서의 건축’을 더이상 지배적인 스타일이 존재하지 않는 혼돈의 건축계가 찾아낸 새로운 개념으로 보기도 하고, 인테리어와 도시계획 사이에서 과거의 견고한 입지를 잃은 건축가들의 생존 전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실은 진정성이 없는 불필요한 건축 개념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사실 건축은 태생적으로 공공적이지 않다. 누군가의 요구와 열망의 발현일 뿐이다. ECC 건축주의 요구는 경쟁력 있는 넉넉한 공간을 가지는 것이었고, 열망은 학교에 선도적인 이미지를 입히는 것이었다. 이화여대는 당시 많은 대학이 공간 확보를 위해 그려낸 마스터플랜처럼 지하에 캠퍼스를 만든다는 원칙을 미리 세워둔 상태에서 국내 건축가를 완전히 배제한 채 학교의 의도를 가장 강한 이미지로 표현해낼 해외 스타 건축가들을 물색했다. 그 결과 완성된 선명하고 낯선 공간은 충격적이고도 대담하여 다수의 이목을 끎으로써 학교 측의 요구와 열망을 충족시켰다.
반면 공모전의 폐쇄성에 대한 비난도 나왔는데, 이는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건축의 양면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건축에 공공성의 짐을 지우는 이유는 그 결과를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건물과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도 그것을 볼 수밖에 없다.
ECC의 열린 공간에서 뛰노는 아이의 행복감, 친구와 나란히 걷거나 마주 앉기 좋은 정원과 계단에서의 설렘, 외벽 유리에 비친 나무와 하늘을 실제로 착각하여 부딪혀 죽은 새를 보는 황망함, 외국인이나 고등학생 관광객들의 낯섦, 이 모든 감정은 건물과 사람과 자연의 조합이 만든 예측 불가능한 감정의 화학작용이다. ECC처럼 낯설고 거대하며,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자연과 건축이 여기저기 서로 얽혀 있는 건축물일수록 좋거나 싫은 감정들은 더욱 대립할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ECC가 애초부터 소유를 초월한 열린 공간을 지향했다는 사실이다. ECC를 설명하는 건축가의 노트에는 ‘샹젤리제’라는 단어가 있다. 샹젤리제에선 부유하건 가난하건, 아이건 어른이건 모두 아름다운 도시에 감탄하고 행복해하며 ‘오, 샹젤리제! 해가 뜨든, 비가 오든, 낮이든, 밤이든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여기에 있어요’ 하며 찬가를 불렀다. 지금의 대학 캠퍼스는 학생들의 교육과 생활공간인 동시에 지역 커뮤니티의 연장이기도 하다. 샹젤리제가 그러하듯 ECC는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모두가 공유하는 소통의 매개체로서의 운명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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