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부모라면 이하이나 아델의 노래에 빠진 10대 자녀의 손에 이 앨범이 들어가지 않길 기도해야 할지 모른다.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28)가 이달 초 낸 2집 ‘이츠 오케이, 디어’ 말이다.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적잖이 들린 복고풍 솔(soul)을 기반으로 한 그의 음악은 아름답다. 웬만한 가요보다 좋은 멜로디에 이따금 변박과 전조가 가미돼 잔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가사는 대중이나 심의와 친해 보이지 않는다.
‘병신 같은 얼굴 치워/너 땜에 죄책감이 들잖아’(‘당신을 파괴하는 순간’) ‘천국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지옥도 있겠네…내 별은 증오로 타네…보라색 아빠가 내 앞에 서 있네…/피…피…’(‘퍼플 대디’) ‘인맥의 바다를 헤엄치는 인어공주는/말보로에게 목소리를 팔고’(‘워커홀릭’)…. 연인과의 이별, 가족의 사망, 일중독 같은 주제를 직설적이고 뒤틀린 언어에 담아냈다. 위험하다.
그러나 자녀는 ‘선우정아’란 이름을 이미 들어봤을 가능성이 크다. 이하이의 데뷔 앨범 수록곡 절반에 작사 작곡 편곡자로 참여했다. 2NE1의 ‘아파’, GD&TOP의 ‘오 예’도 그가 만들었다. “양현석 사장님이 저와 친하게 지내던 YG 프로듀서 쿠시 오빠를 통해 우연히 제 홍대 앞 공연 영상을 봤대요. 가요를 제멋대로 해석해 메들리로 부른 거였는데 맘에 드셨나봐요. 절 데려와 보라고 하셨대요.”
YG에서의 첫 임무는 2NE1의 히트곡 ‘아이 돈트 케어’를 레게풍으로 재편곡하는 거였다. 이 곡의 성공으로 선우정아는 YG 스튜디오를 자주 들락거리게 됐다. 강남 재즈클럽과 홍대 앞 록클럽에서 활동하던 인디 뮤지션이 갑자기 대중가요 작곡가가 된 것이다.
문득 생활권 안으로 들어온 화려한 아이돌의 모습은 어땠을까. “충격이었죠. 갇혀서 양육되는 시스템이리라 상상했는데 빅뱅이든 2NE1이든 너무 자유로웠어요. 몰려다니면서 숙제하는 아이들처럼. 자기주장을 펴고 놀듯이 작업하며 음악에들 미쳐 있었죠.”
이하이를 조련한 그는 인디 음반사로 돌연 돌아갔다. 7년 만에 정규 솔로앨범을 내기 위해서였다. 솔, 록, 재즈, 전자음악, 대중가요의 기술과 감성이 뒤엉키는 새 앨범. 귀에 꽂히는 대중적인 멜로디가 독설적인 가사와 섞이며 뿜는 뉘앙스는 별나다.
타이틀 곡 ‘뱁새’에선 남들이 걸치는 화려한 옷이 어울리지 않는 자신을 표현했다. ‘퍼플 대디’는 열아홉 살 때 부친의 시신을 봤던 기억을 더듬어 만든 곡. 조 카커의 원곡을 재해석한 ‘유 아 소 뷰티풀’에서는 벽과 책상을 두드리고 종이에 연필심을 긋는 소리를 녹음해 드럼처럼 활용했다. 현악기 대신 관악기가 많이 쓰였다. 대중적인 악곡을 보란 듯이 배반하는 독설, 자조, 냉소의 노래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이)하이도 제 곡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소화하기 힘들어했어요. 제 내면이 썩었나봐요. 세상 보는 눈이 좀 비뚤어져 있는지도….”
선우정아는 아홉 살 때 첫 곡을 썼다. 여고에서 강렬한 록 밴드를 조직해 활동하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재즈에 빠졌다. 지난해에는 재즈 밴드 ‘러시 라이프’의 멤버로 앨범을 냈고 올여름에는 피아니스트와 재즈 듀오 앨범을 낼 계획이다.
“저는 원래 재즈 뮤지션, 인디 뮤지션이었어요. YG에서 많은 걸 배웠지만 이제 다시 제 음악세계를 파고들고 싶어요.”
선우정아는 다음 달 4일 오후 7시 서울 서교동 프리버드에서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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