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남 양형모입니다] 박칼린 음악에…이정열 연기에…소름 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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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0일 07시 00분


이정열-박칼린-3층으로 이뤄진 무대(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제공|뮤지컬해븐
이정열-박칼린-3층으로 이뤄진 무대(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제공|뮤지컬해븐
공·소·남(공연 소개팅 시켜주는 남자) 양형모입니다

■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박칼린, 다이애나 역 몰입력 인상적
이정열, 마지막 표정연기 감동 물결
공연 제 맛 느끼려면 가사 집중해야

‘버스 떠난 뒤에 손 흔들어봐야 소용없다’는 말도 맞지만 ‘떠난 버스는 기다리면 반드시 다시 온다’는 말도 맞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지혜의 효용가치로만 보면 오히려 후자 쪽이 더 설득력이 있다.

공연 마니아라면 ‘꼭 봐야지’하다가 초연을 놓쳐 아쉬운 작품들이 몇 편씩은 있는 법이다. 해외팀의 내한공연은 몇 차례 있었지만 우리 배우들이 노래하고 연기한 라이선스 버전 ‘오페라의 유령’은 2001년 초연한 뒤 재공연이 이루어지기까지 무려 8년이나 기다려야 했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이하 넥투노)은 ‘다시 기다리고 싶은 버스’같은 작품이다. 2011년 국내 초연무대를 올린 넥투노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완벽한 뮤지컬’이라는, 과할 정도의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토니어워즈 주요 3개 부문,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을 수상했다.

초연을 놓쳤기에 넥투노가 2년 만에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2년 전 초연할 때는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이름을 알린 박칼린이 주연을 맡는다고 해서 큰 화제가 됐다. 박칼린의 배우 컴백은 20년 만이다. 특히 KBS2 TV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에서 합창단을 성공적으로 이끈 이후 ‘국민멘토’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박칼린의 무대 등장은 엄청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박칼린은 공연, 방송, 강의에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청년특별위원회 위원까지 맡아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서도 넥투노 재공연 출연제의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OK”했다는 후문이다.

● 박칼린, 대가의 감각 돋보여…연기·노래는 다소 아쉬움

넥투노는 평범한 미국의 중산층 가정을 통해 가족과 행복에 대한, 꽤 깊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이다. 조울증과 망상증을 앓고 있는 아내 ‘다이애나’, 우등생이지만 한창 반항기인 딸 ‘나탈리’,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따뜻하고 책임감 넘치는 남편 ‘댄’이 이 가족의 구성원이다. 아참, 한 명이 더 있다. 아들 ‘게이브’. 나탈리가 태어나기 전 생후 8개월 만에 장폐색으로 죽은 아들이다.

박칼린은 자신이 애정해마지 않는 이 작품을 위해 무대에서 혼신의 힘을 쏟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연기, 노래 모두 ‘배우’로서는 살짝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다. 음악 전문가다운 정확한 음정과 노래에 감정을 얹는 능력은 뛰어났지만 다른 배우들에 비해 10% 정도 볼륨을 적게 틀어놓은 듯한 답답함이 있었다. 중요한 2막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연기적 체력이 저하되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음악감독으로, 연출가로 무대와 함께 해온 대가의 감각은 매우 뛰어나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었다. 아들을 잃고, 전기치료요법의 후유증으로 기억마저 상실한 다이애나라는 캐릭터를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드러냈다.

● 한 번 더 보고 싶게 만드는 가사의 ‘맛’

‘댄’ 역의 이정열은 놀라웠다. 가수 출신 배우 이정열의 연기는 이제 물이 오르다 못해 넘쳐흐를 수위에 올랐다는 느낌. 다이애나를 떠나보내는 ‘댄’의 마지막 표정은 영영 잊을 수가 없다. 슬픔과 분노가 뒤엉키면 깊은 공허가 찾아온다는 것을, 그의 주름진 얼굴로부터 배웠다.

뭐니 뭐니 해도 넥투노의 미덕은 자칫 건전생활 캠페인이나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소재를 심히 덤덤하면서도 드라이하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평범한 삶’을 원했지만, 결국 ‘평범의 주변’(넥스트 투 노멀)에 만족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가족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남편은 아내가, 아내는 남편이, 부모는 자식들이 보고 싶어진다. 공연장을 나서며 “그래, 살아야지”하고 미소짓게 된다.

5월 5일까지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한다. 배우들의 노래실력과 연기에 빠져 가사를 흘려듣지 말 것. “한 번 더 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진짜 ‘맛’은 가사에 담겨 있다.

■ 양기자의 내 맘대로 평점

감동 ★★★★ (공연 후 자동기립하게 된다. 좌석에 스프링이 달린 듯.)
웃음 ★☆☆☆ (감동과 웃음은 함께 가기 어려운 친구같다.)
음악 ★★★★ (최고다. 엄지 척!)
무대 ★★★★ (3층의 무대구조에는 많은 상징이 담겨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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