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사랑도 움직인다, 너무 숨막히는 포옹은 피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0일 03시 00분


◇리퀴드 러브/지그문트 바우만 지음/권태우 조형준 옮김
343쪽·1만8500원/새물결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2000년 초 반향을 일으킨 휴대전화 CF의 카피는 이제 ‘고전’이 됐다. 현대인은 영원하지 않을 사랑에 정성을 쏟길 꺼린다. 언제든 삭제 키를 누를 수 있는 온라인 가상 결혼이나 익명의 데이트 채팅 사이트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이 세속화될수록 사랑에 대한 관심과 집착은 커진다. ‘짝’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TV 짝짓기 프로그램은 꾸준히 사랑받고, 사람들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더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고자 한다.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에 희비가 교차하고 카카오톡을 하지 않으면 초조해한다.

이 책은 이처럼 관계를 느슨하게 유지하려는 동시에 그에 집착하는 상충적인 욕구, 그로 인해 빚어지는 현대인의 취약한 유대감, 그 취약함이 일으키는 불안감과 우울을 다루고 있다.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사회학자인 저자는 과거의 제도와 풍습, 도덕 등이 무너진 현대의 특징을 리퀴드(liquid·유동적)하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 유동적인 현대사회에서는 사랑도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저자는 사랑을 대할 때 “너무 숨 막히는 포옹은 피하라”고 권한다.

이 책은 사랑 외에도 이민자와 비정규직 문제, 도시화, 양극화 등 다양한 현상에 주목한다. 저자는 파리 외곽의 빈민가에서 이민자 청소년이 상점을 약탈한 사건이나 런던의 상류층 청소년이 호화 상점을 공격한 상반돼 보이는 사례를 들며 두 사건 모두 ‘유동적 현대’를 보여주는 동전의 양면 같은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또 이 사건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포스트 자본주의적 현상이 아닌, 자본주의가 ‘본색’을 드러내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초기 자본주의 때만 해도 소비의 예외로 꼽히던 성, 사랑, 유대, 연대 같은 인간적인 가치가 이제 모두 상품화돼서 스스로가 매력적인 상품이 되려고 한다는 지적은 스펙이 우선되는 한국의 결혼시장을 떠올리게 한다.

에세이 형식을 취했음에도 책을 읽기가 쉽진 않다. 보들레르와 베냐민, 푸코 같은 철학자가 끊임없이 등장하며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사례가 많이 나와 낯설게 느껴진다. 추상적 개념이 많고 이에 대한 번역도 매끄럽지 않은 느낌이다.

자본주의로 인한 ‘세계화’가 사랑이라는 인간의 내밀한 감정에 어떤 변화를 줬는지 미시적으로 살피고 싶은 인문학도라면 참고할 만하다. 그러나 혹시 개인적인 고독의 원인을 찾고 마음을 달래고자 책을 잡은 독자라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리퀴드 러브#사랑#비정규직 문제#도시화#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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