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울적한 날. 길을 가다 홀로 핀 들꽃을 마주쳤다 치자. 저 꽃도 나처럼 서글퍼 보이는구나. 뭐,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뜬금없는 질문. 식물도 슬픔을 느낄까.
농부가 수확물을 자식에 빗대긴 하지만 사실 과학적으로 이런 의인화는 ‘참’이 될 수 없다. 무 자르듯 단정 짓고 싶진 않지만 식물은 감정도 지능도 없다. 왜? 중추신경계가 없으니까. 다시 말해 “몸 전체의 정보를 조정하는 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책 제목인 ‘식물은 알고 있다’는 출발부터 잘못된 게 아닐까. 하지만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식물이 인식할 수 있는가는 지능이나 감정과는 별개의 문제다. 물론 인식이란 표현이 다소 거창하긴 하다. 하지만 식물이 주변 환경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생존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면, 이는 외부 자극을 인식한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결론적으로 식물은 보고, 냄새를 맡는다. 심지어 듣고 느끼기도 한다. 위치를 파악하고, 과거 정보를 기억하기도 한다. 뭐야? 뇌가 없다더니 웬만한 건 다 하잖아? 그렇다. 식물은 인간과는 다른 계통과 방식으로 진화했을 뿐이지 돌덩어리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른 계통과 방식’이다.
예를 들어 후각에 대해서 알아보자. 인간은 당연히 코로 향기를 맡는다. 이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자. 누군가 방귀를 뀌었다고 하자. 그러면 외부로 향을 유발하는 작은 화학물질(분자)이 퍼진다. 공기 흐름을 타고 당신에게로 분자가 이동하면 코 속 특정 수용체(세포)가 이를 감지한다. 그러면 뇌가 이 자극을 받아들여 반응한다. “으이그, 냄새∼!”
당연히 식물은 코도 뇌도 없다. 하지만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워싱턴대의 데이비드 로데스와 고든 오리언스라는 학자에 따르면 서양흰버들이란 식물은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으면 화학혼합물을 배출한다. 그러면 인근에 있던 서양흰버들의 잎에는 이를 감지하고 애벌레가 싫어하는 페놀성 화학성분이 급속도로 늘어난다. 즉, 공격당한 식물이 이를 경고하는 냄새를 풍기면 옆에 있던 동료 식물이 이를 맡고 방어체계를 갖춘다는 얘기다. 어떤가. 인간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식물도 분명 냄새를 인식하는 셈이다.
과학책치곤 상당히 가벼운 책이다. 두께부터 사람을 압도하는 분량이 아니고, 문장 역시 크게 버겁지 않다. 그렇다고 내용이 결코 허술하지는 않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최신 과학정보를 살뜰히 전달한다. 식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인데도 푹 빠져서 읽게 만드는 매력이 넘친다. 꽃이나 나무라면 제 몸처럼 애지중지하는 분들은 꼭 읽어 보시길. ‘인간과는 다른’ 진짜 식물의 본모습을 만날 수 있다. 사랑한다면 알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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