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한글 장편소설 ‘쌍선기’ 저자 친필 추정 원고본 5권 5책 발굴
양승민 선문대 연구교수 발표
“소설을 볼 때마다 (한규라는 이름의 벗과 함께) 문체의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다가 이 책을 지은 후 이름을 전하고자 계축년 12월에 시작하여 장차 7, 8권을 엮기로 마음먹었으나, 서로의 인생 계획에 따라 중간에 서로 이사해 옮겨서 사니 한가할 적이 없어서 여러 사건을 마지막 권에 마무리하니 중도에 그만둔 것이다.”(‘쌍선기’ 발문 중에서)
19세기 한글 장편소설 ‘쌍선기(雙仙記)’의 저자가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는 친필 원고본이 발굴됐다. 현전하는 한글 고전소설 가운데 저자의 친필 원고본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이 작품은 국내 고전소설로는 유일하게 두 저자의 공동창작물임도 밝혀졌다.
쌍선기는 그동안 일본 동양문고가 소장한 한글필사본 5권 5책이 유일하게 전해져왔다. 학계에서는 문고본의 말미에 적힌 후기를 근거로 19세기 ‘한은규’라는 사대부 남성이 지은 소설이라는 주장이 유력했다.
양승민 선문대 중한번역문헌연구소 연구교수는 20일 서울 성북구 한성대에서 열린 한국고전문학회 학술발표회에서 지난해 개인 수집가를 통해 발굴한 쌍선기 한글필사본 5권 5책에 대해 발표했다.
흘림궁체로 쓰인 이 책에는 소설 본문과 함께 발문 1건과 필사기 1건도 수록돼 있다. 병진년(1856년) 가을에 쓰인 발문에는 성이 이, 자가 대여인 남성(이름 부분은 훼손됨)이 청운의 꿈을 이루지 못해 율리촌이라는 곳에 은거해 살다가 ‘한규’라는 이름의 갑부 친구와 함께 계축년(1853년)부터 병진년(1856년)까지 쌍선기를 지었다고 적혀 있다. 당초 7, 8권 분량으로 쓰려 했으나 헤어지게 되면서 미완성 작품이 됐다. 결국 이 씨가 혼자 친필로 쌍선기 원고를 마무리했고, 이를 며느리 윤씨에게 물려주었다고 돼 있다.
양 교수는 “발문과 필사기의 필체가 모두 본문과 똑같고, 발문은 상당히 많은 정보를 구체적으로 기록한 보기 드문 사례”라며 “이 책은 쌍선기 저자의 친필 원고본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규라는 사람과 함께 쌍선기를 쓴 이 씨의 정체는 누구일까. 흥미롭게도 쌍선기 친필 원고본과 함께 발굴된 고전소설 ‘창선감의록’ 한글 필사본 3권 3책에 그 실마리가 담겨 있었다. 창선감의록 한글필사본의 필체가 쌍선기와 일치해 이 씨가 필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창선감의록의 표지 배접지(표지를 단단히 하기 위해 종이 여러 장을 겹쳐 붙인 것)를 분리하자 편지와 한시, 물목 등을 적은 종이 쪼가리들이 나온 것. 편지의 수신자는 이씨 성을 가진 선달(先達·무과에 급제하고 아직 벼슬을 받지 않은 사람)로 돼 있다. 또 누군가 이 선달에게 ‘쌀 네 말을 꿔 달라’며 보낸 편지도 있다.
양 교수는 “쌍선기의 공동저자인 이 씨는 무과 출신이고 경제적으로 풍족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고전소설은 대부분 작자 미상인데 무과 출신이 소설의 저자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또 “기존의 동양문고본은 내용이 상당히 축약된 데다 등장인물 이름의 오류와 오탈자가 많고 필사자가 의도적으로 고쳐 서술한 부분도 많음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 ‘쌍선기’ 줄거리
쌍선기는 하늘나라의 이태백과 농옥이 지은 죄를 인간 세상에 내려와 속죄한다는 내용. 가정사를 중심으로 한 전반부와 영웅담을 다룬
후반부로 구성됐다. 인간계로 쫓겨난 이들은 각각 한회의 외아들 봉린과 촉왕의 딸 천향공주로 태어난다. 봉린은 아버지의 첩 윤유향의
모함으로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기고 고향을 떠나 파란만장하게 살다 위기에 처한 천향공주의 생명을 구하고 혼례를 올린다. 둘은
유유자적 살다 천상계로 올라가 다시 이태백과 농옥이 된다. 윤유향은 모략으로 한회의 본처를 쫓아낸 음모가 들통 나 끝내 버림받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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