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을 가기 전에 검색한 맛집 블로그에는 ‘점심시간에는 많이 기다려야 한다’는 글이 많았다. 그래서 오후 2시가 다 돼 찾아갔건만 서울 용산구 남영동 ‘제일어버이순대’ 앞은 여전히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기다리는 손님들은 “맛이 깔끔하다” “착한식당에 선정됐다” “냄새가 안 난다” 등 식당에 대한 평가를 늘어놓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면서 의구심과 궁금증이 교차했다. ‘순대가 다 똑같지, 다르면 얼마나 다르려고….’ ‘도대체 어떤 순대일까.’
20분 남짓 지났을까. 차례가 되어 식당에 들어섰다. 11개의 소형 테이블이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8000원짜리 순댓국 정식을 시키자 순댓국과 함께 순대와 머리고기가 푸짐히 담긴 접시가 따로 나왔다. 돼지 소창에 당면을 넣어 만드는 일반 순대와 달리 이곳은 돼지 대창 속에 찹쌀밥, 선지, 여러 가지 부재료를 넣고 쪄낸 함경도식 ‘아바이순대’를 내놓는다.
커다란 순대를 한입 베어 물었다. 소문대로 대창이 쫄깃하면서도 특유의 누린내가 나지 않았다. 국물은 처음엔 다소 심심하게 느껴졌지만 그릇을 비울 때쯤엔 끝 맛이 담백하게 느껴졌다. 단골이라는 60대 여성은 차로 한 시간 운전해 왔다고 했다. 그는 “원래 순대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집 순댓국은 맛이 깔끔해서 자주 온다”고 말했다.
구수한 전라도 말투의 이채호(50) 김미정 씨(41) 부부가 밝힌 맛의 비밀은 단순명료했다. “순대는 냄새와의 전쟁”이라고 말하는 부부는 돼지 대창의 이물질과 냄새를 없애기 위해 매일 대창을 밀가루로 세척하고 물로 헹구는 작업을 반복한다.
그 노력 덕분인지 실제로 식당에는 누린내가 나지 않았다. 소주잔이나 막걸리 잔을 부딪치는 중장년층 남성들도 보였지만 그 못지않게 젊은 연인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했다. 아내 김 씨는 “의외로 20, 30대 젊은 손님의 비율이 60%에 이른다”고 귀띔했다. 순댓국집 취재를 앞두고 ‘옷에 퀴퀴한 냄새가 밸 것’이라며 투덜거리던 일이 떠올라 혼자 무안해졌다.
지난해 3월 채널A에서 착한식당 3호점으로 선정된 제일어버이순대는 공장에서 생산한 ‘완제품 순대’ 대신에 신선한 선지와 채소로 직접 만든 순대를 사용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가게는 오전 11시 무렵 문을 열지만 부부는 꼭두새벽에 출근해 대창을 다듬고 손으로 순대를 만들어 삶는다. 매일 돼지 120마리분의 대창으로 순대를 만드는데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 남편 이 씨는 “할 일이 워낙 많아서 그 많던 친구들을 모두 정리했다”며 웃었다.
부부는 4년 전인 2009년 4월 식당을 시작했다. 지방에서 건축업을 하던 이 씨가 사업에 실패하고 상경해 막노동을 할 무렵이었다. 부부는 살던 월세집의 보증금을 빼고 돈을 모두 끌어 모아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75만 원짜리 가게를 얻었다. 건물 주인이 하던 순댓국집을 그대로 물려받는다는 조건이었다.
사실 두 사람이 인수하기 전 노부부가 운영했던 순댓국집은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그대로 놔뒀다간 월세를 내기도 빠듯할 듯싶었다. 절박한 마음으로 메뉴 개선에 몰두했다. 아내 김 씨는 순댓국집이 부부의 ‘마지막 희망’ 같은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무조건 잘돼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매일 고민했지요.”
결국 부부가 내린 결론은 음식의 기본을 지키는 것이었다. 대창을 깨끗하게 손질하고 신선하고 질 좋은 재료를 사용했다. 순대에 사용하는 선지와 대창, 머리고기는 경기 오산, 평택 도축장에서 직접 받아온 것이다. 이 씨는 “그날 잡은 돼지의 것을 사용한다. 선지에 손을 넣어 냄새가 조금이라도 나면 다시 돌려보낼 만큼 선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순대에 들어가는 찹쌀은 이 씨의 고향인 전북 고창에서 난 것이다. 제주 월동 무, 해남 배추, 포항 부추 등 국내산 채소를 쓰고 순대와 함께 내놓는 새우젓도 전남 영광군 염산의 토굴까지 가서 확인해 사온다고 했다.
제일어버이순대는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과 함께 MSG의 양을 대폭 줄였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조미료 맛에 길들여진 일부 단골은 “음식 맛이 변했다”며 발길을 끊기도 했다. 식당을 인수한 초기엔 월 매출이 전월에 비해 3분의 2 수준으로 줄었던 때도 있다. 지금은 소량의 MSG를 사용하는데 앞으로 MSG 양을 손님이 직접 정해 넣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했다.
“저희는 100% 돼지뼈 사골을 사용하는데도 손님들은 자꾸 밍밍하다고 지적하세요. 처음에는 사골을 덜 끓여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MSG 때문이더라고요.”(김 씨)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부의 정성과 노력이 빛을 발했다. ‘칼칼한 맛이 사라졌다’고 불평하는 손님도 있었지만 ‘신선한 재료와 깔끔한 맛이 좋다’며 식당을 찾아오는 손님이 하나둘씩 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조미료 없이 맛있는 순댓국을 만드는 부부의 노하우도 쌓여갔다. 부부는 지금도 주말이면 유명한 순댓국집이나 해장국집을 가 본다고 했다.
“식당에 다니면서 배울 것은 뭔가 살펴보기도 하고, 맛있으면 집에 와서 곰곰이 연구해 봅니다. 큰 차이는 없어도 조금씩 개선하면서 배우는 게 많지요.”(이 씨)
착한식당으로 선정됐을 때는 순댓국집에 대해 조금씩 입소문이 나던 시점이었다. 제작진이 공식적으로 촬영을 의뢰하자 부부는 많이 망설였다고 했다.
“손님을 모시는 식당에서 당연한 일을 하는데 이게 과연 남들 앞에 자랑할 게 되는지 걱정스러웠어요. 텔레비전에 나와 괜히 잘난 체 한다고 이야기 나올까 봐 두렵기도 하고. 멋쩍기도 했고요.”(이 씨)
그리고 방송 후, 여느 착한식당들처럼 제일어버이순대도 한참 유명세를 치렀다. 당시 본방송을 놓친 부부는 갑작스레 전화가 수없이 울리자 비로소 방송이 나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부부는 당시를 “전화기에 미안할 만큼 전화가 많이 오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방송 후 많은 것이 변했다. 이제 개업 초기의 열 배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있다. 부부를 포함해 3명이었던 종업원도 6명으로 늘었다. 과거에는 6개월마다 새로운 월셋집을 찾아 이사를 다녔지만 지금은 가게가 있는 건물 2층에 전셋집도 얻었다. 빚도 많이 갚았다.
처음에 방송을 보고 찾아왔던 손님들은 이제 단골이 되어 식당을 다시 방문한다. 아내 김 씨가 “그때 방송 안 찍었으면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어쩔 뻔했느냐”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한 번 오셨던 분이 얼마 안 가 또 오셨을 때 뿌듯함 같은 게 느껴지죠. 노력을 보상받았다고 할까요. 그래도 매일 오시진 말라고 말씀드려요. 그러다 질려 버리면 안 되잖아요.(웃음)”
취재를 마칠 즈음 한 손님이 순댓국을 포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씨는 순대와 국물을 따로따로 포장해 손님에게 사용할 냄비의 특성에 따라 순댓국을 어떻게 끓여야 할지, 보관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포장해 간 순대를 쫄깃한 상태로, 좀더 오랫동안 먹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부부는 장사가 잘되는 요즘에도 사골을 어떻게 끓일지, 어떻게 냄새를 더 제거할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 “충성스러운 손님은 없어요. 결국 저희들이 더 고민하고, 더 나은 음식을 내놓아야 하지요. 내가 떳떳한, 나를 속이지 않는 장사를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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