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새로 부임한 우리 부장은 ‘파티 마피아(party mafia)’다. 부서와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언론사의 문화부장이란 비교적 ‘젠틀맨(gentleman)’에 가까운 사람이다. 아랫사람을 쪼면서 직접 손에 ‘피’를 묻히는 건 대개 각 팀을 책임지는 차장급이다. 물론 성품이 마피아 보스쯤 되는 성깔 있는 부장도 있다.
어쨌든 우리 부장은 다행히 그냥 마피아는 아니다. ‘파티 마피아’란 뜻이다. 오후 10시 30분쯤 야근을 정리하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방을 싸는 부원을 향해 그는 그림자처럼 조용히 다가와 “어디 좋은 데 가느냐”고 묻는다. “아뇨” 하고 배시시 웃는다. “집에 간다”고 한다. 이건 면피가 안 된다. “근처에서 한 잔만 간단하게 할까”라는 제안을 끊을 배포가 없다면 소맥(燒麥) 세례에 두 팔 벌려 ‘할렐루야’를 외쳐야 한다. 부서 회식을 1박2일로 즉석 연장하는 이도 다음 날 술 깨고 나서 생각해보면 대개 ‘마피아 부장’이었다. 그는 정말 ‘파티 마피아’다. 그는 진짜 좋은 사람이다.
# 2 ‘Gonna make you sweat’
‘젠틀맨’은 ‘강남스타일’과 다른 노래다. 당연한 얘긴가…. 그게…. 비슷한데 많이 다르다. 뮤직비디오 틀기 전에 음악부터 들어볼까. 그냥 흘려듣지 말고. △귀를 열고 △몸을 흔들며 △노래는 최대한 싸이와 똑같이 부르려고 노력해야 한다.
‘쿵, 짝, 쿵, 짝, 쿵, 짝, 쿵, 짝…’ 무지하게 단순한 이 4박자 리듬 4마디로 ‘젠틀맨’은 시작한다. ‘강남스타일’과 같은 구조. 두 노래의 도입부 모두 ‘자, 이런 박자를 줄 테니까 기억해. 계속 줄 거야, 이 박자. 슬슬 흔들면서 춤출 준비하고 있어봐’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아홉 번째 마디에서야 1절이 시작된다, 두 곡 다.
이 첫 8마디에 ‘강남스타일’과 ‘젠틀맨’의 정수가 다 담겼다. ‘강남스타일’은 기본 리듬 4마디의 막바지부터 ‘오빤 강남스타일!’이 끼어들어 일곱 번째 마디까지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이 이어진다.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이 노래 중심이 될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여덟 번째 마디에서는 앞으로 곡 내내 절과 절, 절과 상승부의 연결부에서 굴곡을 만들 코드 진행인 ‘G-A’가 복선으로 깔린다.
# 3 ‘부드럽게 말이야’
‘파티 마피아’가 주최하는 파티의 처음은 부드럽다. 특유의 사람 좋은, 소리 없는 웃음은 자기 얼굴에 패인 잔주름을 응축해 애써 상대방에게 선의의 기호를 전송한다. 그렇다고 해서 본론이 터프한 것도 아니다.
‘파티 마피아’ 부장은 부원에게 술을 강권하지 않는다. 소맥의 절묘한 배합은 한 잔 두 잔 돌아갈수록 물리적 결합을 넘어 화학적 결합으로 착시(錯視), 아니 착미(錯味)된다. 술자리 분위기는 점점 하나가 돼 타오른다. 분위기가 고조될 때 외치는 부장의 한마디는 ‘오빤 강남스타일!’도 ‘I’m a mother father gentleman’도 아니다. “2차 갈 사람?! 집에 갈 사람은 가도 돼!”
# 4 ‘Baby, Baby 나는 뭘 좀 아는 놈’
‘젠틀맨’과 ‘강남스타일’은 태생부터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설계’됐다. ‘강남스타일’의 조성(調性)은 나단조(B 마이너)다. 뿌리가 되는 음은 ‘시’다. ‘젠틀맨’은 바단조(F 마이너)다. 근음(根音)은 ‘파’다. ‘강남스타일’과 ‘젠틀맨’의 기본 조성은 음정으로 치면 증4도 차이다. 딱 반 옥타브. 두 조성에서 발전시킬 수 있는 음계와 코드는 서로 거의 겹치지 않게 마련이다. 두 노래를 연달아 들었을 때 비슷하지만 왠지 완전히 판박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 이유다.
랩에도 음고(音高)가 있다. ‘낮에는 따사로운’으로 시작하는 ‘강남스타일’ 랩은 ‘레’와 ‘시’ 사이를 오간다. B 마이너의 1도와 단3도 사이를 오가는 구성이다. 반면 ‘알랑가 몰라’로 출발하는 ‘젠틀맨’의 랩 음정은 F 마이너의 단3도(‘도’)와 단7도(‘미플랫’)를 중심으로 분포한다. 미치지 않고서야 음정까지 따져가며 춤추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는 ‘강남스타일’과 ‘젠틀맨’의 뉘앙스를 미묘하게 갈라놓는 디테일이 된다.
코드 진행에서도 ‘젠틀맨’과 ‘강남스타일’은 다르다. ‘젠틀맨’은 시종일관 나단조의 I도인 B 마이너 한 코드로 진행된다. 반면 ‘강남스타일’의 코드는 절과 후렴을 연결하는 중간부인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그래, 바로 너’ 부분에서 ‘G-A-B 메이저’로 진행한다. ‘강남스타일’이 훨씬 굴곡 있고 표정이 살아 있으며 극적인, ‘노래 같은 노래’처럼 여겨지는 이유다. ‘젠틀맨’의 단조로운 코드 진행은 이렇게 말한다. 들리는가. ‘멜로디는 개나 줘. 닥치고, 춤이나 춰!’
# 5 ‘네가 듣고픈 말하고픈 게 난데 말이야’
‘파티 마피아’는 이쯤해서 2차 장소로 전선(戰線)을 이동한다. 대열은 좀체 흔들리지 않는다. 낙오자는 거의 없다. 소맥 포화를 견디지 못한 패잔병만 있을 뿐이다. 그들은 후방으로 후송되지 못하고 동행한다. ‘왜 화끈해야 하는 건지’ 묻는 대원은 거의 없다. ‘용기 패기 똘기’로 무장하고 일단 ‘멋쟁이’인 척해야지. 드넓은 서울 광화문 바닥에서 굳이 찾아가는 곳은 좁다란 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비좁은 2층 공간. 대개 제2 전선이 형성되는 곳이다. 여기서부터 파티는 본격적으로 반복 악절 같은 것에 갇힌다. 같은 양태를 무한 반복한다. 했던 말 또 하고 비운 잔 또 비우게 만드는 건 ‘양맥(洋麥)’ 물리학이다. 시침은 자정을 넘는다. 모두 은근히 바라는 그런 말이 ‘마피아’ 입에서 나올 것도 같은데….
# 6 ‘아리까리하면 까리해’
싸이의 필살기는 ‘사이’다. 정박과 정음의 사이. 랩을 멜로디와도, 말과도 다르게 만드는 미분음(微分音·반음 사이의 음)과 미분박(微分拍·정박보다 미세하게 당기거나 밀어내는 박자)을 가사 내용, 한국어의 된소리, 거센소리, 이중모음과 절묘하게 결합해 중독적인 뉘앙스를 만드는 싸이의 10년 노하우는 가장 싸이답지 않은 두 곡을 여전히 싸이답게 만든다. ‘알랑가 몰라’의 미묘한 음고 움직임, ‘말이야’인지, ‘말위야’인지, ‘마리아’인지 모를 발음, ‘똘~기’라고 랩을 할 때의 당겨지는 느낌 같은 것들 말이다.
‘강남스타일’에서 데려온 노인과 아이, 엘리베이터, 놀이터를 여기저기 변주해 붙여놓은 ‘젠틀맨’의 뮤직비디오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한 해석과 분석을 읽었으리라 믿는다. 궁극의 상대를 만나는 장면의 배경은 공공성이 강한 지하철에서 육체의 집결지인 헬스클럽으로 바뀌었다. 남녀(여자는 각각 현아와 가인)의 짧고 급격한 교감의 순간은 두 작품에서 모두 빠른 교차편집으로 표현된다. ‘강남스타일’의 덤덤한 얼굴 클로즈업은 어묵과 국숫발을 씹고 빨아들이는 ‘젠틀맨’의 자극적인 장면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신사보다 놀부에 가까운 싸이의 엽기 행각은 말할 것도 없다. ‘강남스타일’의 저렴하고 원시적인 극한값이 ‘젠틀맨’이다.
# 7 ‘You know what I’m saying?’/ ‘You know who I am’
이제 이 파티의 가장 흥분되는 최고점에 대해 얘기하려니 입술까지 바짝바짝 말라온다. 3차에서 기진맥진한 ‘파티 마피아’ 부장의 입에서 환희의 한마디가 나오는 순간보다 더. “집에 가자. 내일 출근은 해야지!”
‘강남스타일’의 막바지인 2분 58초부터 3분 12초 사이에 등장하는 변형 부분,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Baby, Baby, 나는 뭘 좀 아는 놈. You know what I’m saying’에 대칭되는 부분이 바로 ‘젠틀맨’의 하이라이트다. 2분 20초에 등장하는 ‘Gonna make you sweat. Gonna make you wet. You know who I am. Wet PSY!’ 말이다. ‘강남스타일’의 후반부가 한 고비 쉬어가는 분위기였다면 ‘젠틀맨’의 이 부분은 청자의 아드레날린을 가장 많이 분출하는 9부 능선이다. 각운을 맞춘 랩과 맞물리는 스네어 드럼의 호전적 연타는 빌드업(build-up·일렉트로닉 댄스음악에서 폭발 직전 리듬을 2배로 연속해 잘게 쪼개며 클라이맥스로 이끄는 부분)으로 이어진다.
‘젠틀맨’의 3분 14초 가운데 결정적 1초, 분출의 순간은 단순히 ‘Wet Psy!’로 들리지 않는다. 그건 더 한국적으로, 더 고급스럽게 이렇게 들린다. 더 싸게.
‘웻 싸이!’
‘젠틀맨’의 인기와 별개로 벌써 ‘강남스타일 Pt.3’가 궁금해진다. 난 ‘파티 마피아’의 졸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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