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일본에서 귀국한 조각가 권진규(1922∼1973)는 서울 성북구 동선동 언덕 위에 집을 지었다. ‘ㄱ’자 모양의 집엔 대문이 두 개였다. 큰 문은 어머니와 막내 여동생이 사는 살림채로 통했고, 그 옆 작은 문은 곧바로 아틀리에로 통했다. 문과 문 사이에는 담장을 세워 살림채와 구분했다. 작업에만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내성적이고 고독했던 예술가는 51세에 ‘인생은 공(空), 파멸. 오후 6시 거사’라는 유서를 남기고 아틀리에 2층 난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테라코타나 종이에 옻칠을 해 만드는 건칠(乾漆) 작품으로 한국 근현대 조각사에 발자취를 남긴 조각가 권진규의 40주기 행사가 기일인 5월 4일 동선동 ‘권진규 아틀리에’에서 열린다. 아틀리에 내부에는 권진규의 작품 사진과 복제품이 전시된다.
시민단체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주최하는 이번 행사에선 그가 생전에 좋아하던 해바라기 헌화식과 외조카이자 권진규기념사업회 이사인 허경회 씨의 강연이 열린다. 또 권진규기념사업회는 이날 작가에 대한 연구를 진작하기 위해 작품의 이미지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표할 예정이다. 02-3675-3401∼2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권진규 아틀리에는 작가의 여동생인 권경숙 씨가 2006년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 기증한 것이다. 2008년에 개방돼 지금은 공모를 통해 작가들에게 살림채를 작업공간으로 내어주고 있다.
24평 공간의 집 뒤쪽에 위치한 아틀리에는 살림채보다 넓다. 작품을 잘 말리기 위해서였는지 한쪽 벽의 유리창도 꽤 크다. 나무판을 쇠사슬로 높은 천장에 매달아 2층 구조로 만든 작품 보관 공간도 있다. 작가가 쓰던 작업대 의자, 전등 스위치, 삼각대, 탁자도 고스란히 있다. 테라코타 작업에 필요한 화덕과 조그만 우물도 그대로다. 시멘트 벽에는 ‘면다실 940405’, ‘서상만(19만 원)’ 같은 작가의 메모도 남아 있다.
권진규의 예술 철학과 노력이 이 아틀리에에 녹아 있다. 28세에 일본 무사시노 미술학교에 진학해 미학과 조각을 배운 그는 귀국 후 이곳에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정립했다. 1960년대 한국 조각계가 서양의 추상조각에 빠져들 때 그는 서양 조각의 흐름을 벗어나 고대 전통문화의 원형성을 추구했다. ‘자각상’ ‘애자’ ‘소녀의 얼굴’을 비롯한 주요 작품이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국립현대미술관 류지연 학예사는 “선생은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선생의 독특한 기법인 건칠도 불상을 만드는 전통 공예 기법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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