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취향]가드닝의 참맛에 빠진 송자인 디자이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일 03시 00분


화려한 꽃보다 야생초 자연미에 반했어요

디자이너 송자인 씨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컨셉트스토어 ‘모 제인송’ 가드닝 공간에서 화분을 들고 웃고 있다. 그녀는 “정성껏 가꾼 식물이 자라는 걸 보면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디자이너 송자인 씨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컨셉트스토어 ‘모 제인송’ 가드닝 공간에서 화분을 들고 웃고 있다. 그녀는 “정성껏 가꾼 식물이 자라는 걸 보면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따뜻한 봄날에는 자연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햇빛과 녹색의 푸름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떠는 것만으로 턱밑까지 쌓인 스트레스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지난달 22일 찾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디자이너 송자인 씨의 콘셉트 스토어 ‘모 제인송’은 딱 봄날 같은 공간이었다. 한남동 ‘꼼데가르송길(꼼데길)’ 대로변에서 안쪽으로 난 좁은 흙길을 따라 열 걸음만 가면 ‘모 제인송’이 나온다.

좁은 흙길 왼쪽에는 사이프러스나무가 줄을 지어 있다. 빈센트 반 고흐가 하늘로 불타오르는 듯 그렸던 그 나무다. 꼼데길 한복판에 있다는 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한적한 주택가로 느껴진다. 곳곳에 금귤나무, 블루베리나무, 파피루스, 작은 모종 화분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2층 카페를 지나 3층으로 올라가면 옥상에 각종 모종을 키우는 밭과 카페 테이블이 어우러져 있다.

가드닝에 빠진 디자이너

“나중에 선베드도 놓을 거예요. 하루 종일 편하게 누워서 낮잠을 자고, 책을 읽으며 쉬는 공간이 됐으면 하거든요.”

발목까지 내려오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화장기 없는 얼굴을 한 송 씨가 말했다. 그녀는 “2004년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SFFA) 컬렉션으로 데뷔한 이래 언젠가 나만의 콘셉트 스토어를 열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며 “우연히 이 단독주택 건물을 보고 곧바로 마음을 정했다.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도시 여자’를 추구하는 브랜드 ‘제인송’과도 잘 맞을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나무와 풀을 좋아하는 그녀의 취향이 ‘모 제인송’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매장 오픈일도 식목일(4월 5일)이었다. 각종 모종 씨를 팔고, 100년 전통의 영국 ‘호스(HAWS)’ 물뿌리개와 갖가지 색깔의 삽 등 가드닝용품도 진열할 예정이다.

서울 강남 토박이인 그녀가 가드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버지 덕분이다. 아버지는 아파트 베란다를 난으로 가득 채웠다. ‘난 달력’이 있어서 물을 줘야 할 때 등을 기록했다. 결국 그녀가 스무 살 무렵 부모는 경기 성남의 주택가로 이사했다. 마당에 있는 아버지의 온실에는 바나나나무 같은 열대식물도 산다.

“아버지 덕분에 사무실에도 화분이 많았어요. 물을 주고 가꾸면 어느 날 예쁜 꽃이 피어 있고, 바쁜 생활 탓에 신경을 못 쓰면 금세 죽더라고요. 무슨 일이든 가꾸고 관심을 줘야 꽃이 핀다는 걸 깨닫게 해 줍니다. 식물이 조금씩 자랄 때 느끼는 소소한 행복도 크고요.”

아버지처럼 가드닝의 매력에 빠진 그녀는 2008년 패션위크부터 패션쇼를 찾은 초청 바이어와 언론인들에게 모종 화분을 선물한다. 그녀가 선물한 모종을 꾸준히 키워 몇 년 뒤 보여 주는 해외 바이어도 있다. 올해에는 ‘루비네크리스’를 준비했다. 언뜻 보면 선인장같이 생겼지만 가꾸다 보면 꽃도 핀다고 한다.

건강하게 아름다운 여자

송 씨는 “화려한 꽃보다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야생의 식물이 더 좋다”고 말한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남천’이다. 그녀의 브랜드 ‘제인송’이 추구하는 여성도 화려한 장미가 아니다.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은 듯한 자연스럽고 건강한 도시 여자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다. 딱 송자인 자신의 모습이다.

제인송은 젊은층에게 사랑받는 몇 안 되는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로 꼽힌다. 송 씨는 ‘김동순 울티모’의 김동순 디자이너의 딸로 데뷔 때부터 2세 디자이너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과 수원점 등 백화점 단독 매장을 내며 10년째 인기 브랜드로 성장한 것은 순전히 디자이너 송자인의 힘이다. 그녀가 추구하는 간결하면서도 여성다운 디자인이 대중의 호응을 받은 것이다.

물론 자리를 잡기까지 위기도 있었다. 단독 매장을 얻기 위해 힘들게 설득해 2008년 갤러리아 명품관에 매장을 냈다. 하지만 다양한 디자인을 시즌 내내 만드는 기존 패션 브랜드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았다. 개인 디자이너로서 봄여름, 가을겨울 시즌 콘셉트에 따라 한정된 디자인과 수량을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매출은 빠듯했고 급기야 2010년에는 ‘매장 철수’ 경고를 받았다.

꾸준한 노력이 이때 빛을 발했다. 입소문으로 퍼진 그녀의 간결한 트렌치코트가 이때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한 것이다. 매출이 오르니 구석에 있던 매장이 목이 좋은 곳으로 옮겨졌다.

송 씨는 “예쁜 옷을 만들면 사람들이 알아서 사갈 줄 알았지만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유통과 디자인, 상품이 필요하다”며 “꼼데가르송의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처럼 대중의 취향에 맞는 옷과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반영한 옷을 함께 팔며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