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 정민정이 편찬한 ‘심경부주’
퇴계, 매일 아침 읽으며 마음공부… 17대손 이치억 박사 대중강좌 열어
“나는 심경부주(心經附註)를 얻은 뒤에 비로소 심학(心學)의 연원과 심법(心法)의 정미(精微)함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평생 이 책을 신명(神明)처럼 믿었고, 엄한 아버지처럼 공경했다.”(‘퇴계선생언행록’ 중)
조선 유학의 거두인 퇴계 이황(1501∼1570)은 50대에 접어든 뒤 ‘심경부주’라는 책을 각별히 아껴 매일 아침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남송의 주자학자인 진덕수(1178∼1235)가 유가 경전에서 마음공부에 좋은 글을 뽑아 ‘심경(心經)’을 편찬했고, 여기에 명나라의 학자 정민정(1445∼1499)이 풍부한 주석을 덧붙여 4권으로 완성한 책이다. 마음을 맑게 하는 공자, 맹자, 주자 등 유학자들의 격언이 담겨 있다. 출간 당시 중국에서는 주목받지 못했으나 조선으로 넘어와 퇴계가 이 책의 가치를 알아보고 적극 연구하면서 조선 유학자들 사이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퇴계는 ‘심경부주’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을 연구해 ‘심경후론(心經後論)’이라는 간단한 논문을 남기기도 했다.
퇴계의 애독서였던 심경부주를 퇴계의 17대 종손인 이치억 씨(38)가 대중을 상대로 강의한다. 7일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7∼9시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있는 사단법인 동인문화원(원장 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에서 ‘퇴계 선생의 마음공부 비결’이라는 제목으로 1년여 동안 여는 강좌다. 일본 메지로(目白)대에서 아시아 지역문화를 전공한 이 씨는 2002년 성균관대 대학원 유학과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유학을 공부했고, 2월 성균관대에서 ‘퇴계철학의 주리적 특성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남에게 ‘심경부주’를 가르친다기보다는 저부터 수강생들과 함께 ‘심경부주’를 깊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강좌 교재로 택했다”고 말했다. 440여 년 전 퇴계가 마음수련의 기초로 삼았던 동양고전을 지금 읽는 것은 최근 문화계의 화두인 ‘힐링’ ‘동양고전’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이 씨는 “‘마음공부’라고 하면 왠지 거창해보이지만 실은 스스로 마음을 편하게 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라며 “‘심경부주’를 공부함으로써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한 답을 얻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퇴계는 자신이 ‘심경부주’를 얼마나 숭상하는지를 문집에 이렇게 남겼다. “내가 젊어서 한양에서 공부할 적에 묵었던 곳에서 처음 이 책을 구해 읽었다. 비록 도중에 병으로 중단했기에 ‘늦게 깨달아 이루기가 어렵다’는 탄식을 하고 있지만, 애초에 학문에 감발(感發)하여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의 힘이었다. 그래서 평생토록 이 책을 높이고 신봉하여 사서(四書)나 근사록(近思錄)의 아래에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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