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캠핑족 로망은 참숯구이… 생고기, 당일 사가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3일 03시 00분


아웃도어 활동에 적합한 요리는

실내건 실외건 맛있는 음식을 폼 나게 먹어야 행복한 법이다. 번거롭다고 ‘끼니를 때우는’ 건 아웃도어 활동에 대한 모독이다. 아웃도어 전문브랜드 블랙야크 관계자들이 지난달 30일 경기 파주시 문발동의 잔디밭에서 여러가지 아웃도어 요리들을 직접 만들어 보이고 있다. 파주=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실내건 실외건 맛있는 음식을 폼 나게 먹어야 행복한 법이다. 번거롭다고 ‘끼니를 때우는’ 건 아웃도어 활동에 대한 모독이다. 아웃도어 전문브랜드 블랙야크 관계자들이 지난달 30일 경기 파주시 문발동의 잔디밭에서 여러가지 아웃도어 요리들을 직접 만들어 보이고 있다. 파주=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철수야, 밥은 먹고 다니니?”

어머니는 늘 묻는다. 잘 먹어 볼살이 통통해졌는데도 묻고 또 묻는다. 초등학생이든 자취하는 대학생이든, 심지어 마흔이 훌쩍 넘은 중년의 아저씨도 질문을 피해 갈 수 없다.

이 물음은 분명 어머니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영화 속 박두만 형사(송강호)도 연쇄살인 용의자인 박현규(박해일)에게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묻지 않았나.

아웃도어 활동에서도 음식은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얼마나 잘 먹느냐는 그 여행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판단하는 결정적 잣대가 된다. 오죽하면 한때 TV 예능프로그램의 강자였던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가 먹는 걸로만 방송 분량의 절반을 뽑아냈을까. 지금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아빠! 어디 가?’도 다르지 않다.

이제 아웃도어 활동에 나선 이들에게 묻는다.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십니까?”

로망은 구이… 현실은 라면


동아일보 아웃도어 섹션 ‘렛츠’가 일반인들에게 물었다. 질문은 ‘당신이 아웃도어 활동을 할 때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무엇입니까’와 ‘당신이 아웃도어 활동을 할 때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식은 무엇입니까’였다.

산악 전문가들이 엄선한 20가지 음식을 보기로 제시한 뒤 두 질문에 대해 각각 세 가지를 꼽도록 했다. 조사는 인터넷 설문조사업체 ‘두잇서베이’의 도움으로 진행됐고 지난달 25∼30일 약 4300명(각 질문에 대한 응답자 수가 조금씩 달랐음)이 응답했다. 신뢰수준은 95%, 오차범위는 1.51%포인트였다.

먹고 싶은 음식 상위권은 ‘구이’가 휩쓸었다. 1위는 응답자 4277명 중 2414명(56.4%)이 선택한 참숯구이였다. 사실 캠핑동호회 중 ‘캠큐’(캠핑+바비큐)란 이름을 가진 곳이 있을 정도로 참숯구이에 대한 지지는 절대적이다.

2위는 조리 방법만 살짝 바꾼 훈제삼겹살로 1445명(33.8%)의 선택을 받았다. 3위는 바닷가에서부터 해발 5000∼6000m 고지의 히말라야 베이스캠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라면이었다. 라면 지지자는 1327명(31.0%)이었다. 소시지구이(795명)가 4위에 올랐고, 5∼7위는 각각 맥주와 치킨(783명), 대하구이(748명), 조개구이(743명)였다.

그 뒤를 이어 닭갈비 철판볶음(606명)과 김치찌개(585명), 부대찌개(443명)가 10위 안에 자리했다.

흥미로운 것은 라면을 제외하면 8위까지가 모두 고기류라는 사실이었다. 구이가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치킨이 튀김 음식으로는 유일하게 10위권에 들었다. 찌개류는 9, 10위로 겨우 체면치레를 했다.
▼ 밥 지을땐 물 충분히… 요리 간단한 닭백숙-어묵탕 ‘강추’ ▼


다음은 현실을 돌아볼 차례다. 궁중음식을 먹고 싶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신선로를 가질 수는 없는 법. 아니나 다를까 ‘선호도’ 부문 3위에 오른 라면이 ‘잘할 수 있는 음식’ 부문에선 당당히 1위에 올랐다. 4251명 중 2233명(52.5%)의 선택을 받았다. 2위 참숯구이는 1441명(33.9%)이 잘할 수 있다고 응답했지만, 이는 선호도 부문 득표수의 60%밖에 되지 않았다. 김치찌개가 1004명(23.6%)의 응답을 얻어 3위로 약진했고 ‘아빠! 어디가?’에 출연 중인 윤후의 인기를 등에 업은 짜파구리가 994명(23.4%)의 선택으로 4위에 올랐다. 소시지구이(951명), 김치볶음밥(859명), 훈제삼겹살(735명), 소시지볶음(479명), 떡볶이(468명), 부대찌개(463명)가 차례대로 5∼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잘할 수 있는 음식에선 순위 지각변동이 일어난 셈이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가 이토록 크단 말인가. 먹고 싶은 음식 상위 10개 중 4개(맥주와 치킨, 대하구이, 조개구이, 닭갈비 철판볶음)가 잘할 수 있는 음식 톱10에서 탈락했다.

사람들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해답은 다음 질문에 대한 응답에서 살짝 엿볼 수 있다. ‘당신은 아웃도어 활동 중 음식을 해 먹을 때 선정 기준이 무엇입니까.’ 예상했겠지만 ‘요리의 간편함’을 꼽은 응답자가 4238명 중 1721명(40.6%)으로 가장 많았다. ‘맛’(917명)이 2위에 오른 가운데 ‘상하지 않는 음식’(356명)과 ‘식자재료 구입의 편리성’(351명)이 나란히 3, 4위를 기록했다. ‘식자재료 가격’(174명)과 ‘영양’(115명)은 7, 8위에 머물렀다.

밥과 고기 완전정복


지난달 30일 경기 파주시 문발동의 파주출판단지 잔디밭에 20, 30대 남녀 넷이 모였다. 아웃도어 전문브랜드 블랙야크 관계자들이다. 아웃도어 활동엔 도가 튼 이들은 렛츠 독자들을 위해 ‘야외에서 요리하기’의 진수를 소개했다.

첫 번째 과제는 밥이었다. 밥은 먹을거리의 가장 기본이 되면서 가장 중요한 음식이다. 그렇지만 초보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블랙야크 레저사업부의 이상민 주임(32)은 “밖에서 밥을 하면 밑바닥은 어느 정도 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사랑하는 가족에게 생쌀을 씹는 고통을 안겨주기보다 바닥만 조금 태우는 게 백 배, 천 배 낫다는 얘기다. “버려야 채울 수 있다”는 선인들의 말과도 겹치는 조언이다.

일단 물의 양은 전기밥솥을 활용할 때보다 조금 더 많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밥이 너무 타버릴 수 있다. 센 불로 5, 6분 끓이다 보면 밥물이 조금씩 넘쳐흐른다. 이때부터는 불 조절이 생명이다. 넘친다고 해서 불을 너무 줄여버리면 밥이 설익는다. 절대 뚜껑을 열어봐서도 안 된다. 코펠 안의 압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밥물이 넘칠 때 중불로 맞춰 더 끓이다 보면 살짝 탄내가 난다. 바로 이것이 불을 약하게 줄이라는 신호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뜸은 오래 들일수록 좋다. 맛있게 지어진 밥을 퍼낸 뒤엔 코펠에 물을 넣고 약한 불로 20분 정도 끓여보자. 숭늉도 맛있지만 설거지도 훨씬 쉬워진다.

야외에서 밥을 지을 때는 잡곡을 써도 되는데 현미는 적절한 선택이 아니다. 집에서도 현미밥을 하려면 오래 불려둬야 하지 않은가. 영양도 좋지만 하루 이틀 현미를 건너뛴다고 건강을 포기하는 건 아니다. 여기서 팁 하나. 식사 후 남은 밥을 김자반, 통조림참치 등과 버무린 뒤 주먹밥으로 만들어 두면 뛰어놀기 바쁜 아이들 간식으로 제격이다.

다음은 고기 굽기다. 고기를 하루 전날 사둔 경우에는 얼려둬야 한다. 따라서 가능하면 당일에 생고기를 구입하는 게 좋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육류도 어패류와 마찬가지로 쉽게 상할 수 있어 꼭 아이스박스를 준비해야 한다.

고기를 구우려면 숯불이 필요하다. 장작불에 고기를 굽는 것은 고기 먹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장작이 타면서 내는 불은 너무 세서 고기가 채 익기도 전에 표면을 태워버리기 십상이다. 만약 숯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만들어 쓰면 된다. 팔뚝만 한 장작 5, 6개에 불을 붙인 후 어느 정도 기다리면 숯이 만들어진다. 이 숯불로 고기를 굽는 동안 다른 숯을 더 준비하면 여유 있게 요리를 할 수 있다. 고기를 구울 때 은박지를 활용하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을 터. 야외에선 바람이 많이 부는 만큼 목장갑이나 토시를 미리 준비하면 맨살에 기름이 튀는 걸 막을 수 있다.

분위기와 여유에 취하다

라면이나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같은 걸 여기서 따로 소개할 필요는 없겠다. 많은 사람이 이미 “잘할 수 있다”고 큰소리 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렛츠가 준비해 본 요리가 닭백숙이다. 의외로 간단하다니 누구나 한번 시도해봄 직하다. 우선 생닭 한 마리와 마늘, 소금을 한꺼번에 코펠에 담고 물을 붓는다. 물은 닭이 살짝 잠길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끓인다. 30분 정도 지난 뒤 젓가락으로 닭을 찔러서 부드럽게 들어가면 끝. 너무 간단해 싱겁기까지 한 레시피다. 닭을 맛있게 먹고 남은 육수는 활용가치가 무궁무진하다. 국물에 생쌀을 넣고 끓이면 닭죽이 되고, 라면을 넣고 끓이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닭 육수 라면이 탄생한다.

블랙야크 마케팅사업부의 김종우 주임(30)은 어묵탕을 강력 추천했다. 야외에서 만들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요리이면서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산을 탔고, 대학생 시절 히말라야 7000m 고지를 두 번이나 다녀온 그이기에 더 믿음이 간다. 어묵탕을 만들려면 먼저 무와 대파를 크게 썰어 코펠에 넣고 끓인다. 그런 다음 어묵을 넣자. 나무 꼬챙이에 어묵을 꽂으면 더 좋다. 어묵 포장에 들어 있는 수프가 싫다면 물에 멸치 몇 마리를 먼저 넣고 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된다.

마지막으로 디저트다. 색다른 디저트를 맛보고 싶다면 꺼져가는 숯불을 재활용해 보자. 재료는 바나나다. 바나나를 통째로 약한 불 위에 얹으면 된다. 3, 4분 지나면 껍질 아래쪽이 까맣게 타지만 속은 물기가 많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한 번 뒤집어 반대편 껍질도 까매질 때까지 둔다. 젓가락으로 껍질을 벗기면 가벼운 맥주 안주로 그만인 바나나구이가 속살을 드러낸다.

음식의 향연이 끝난 뒤 블랙야크 직원들에게 물었다. 왜 밖에서 먹는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지느냐고. 이 주임이 명쾌한 답변을 내놨다.

“첫째는 분위기고, 둘째는 여유죠. 척박한 도심을 벗어나 아웃도어 활동을 하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여유가 생기지 않나요? 그러니 음식도 더 맛있을 수밖에요.”

파주=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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