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이야’는 경쟁사 광고가 떠올라서….” “물에 타서 마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주시면….”(제약사 관계자들)
루시아, 에피톤 프로젝트, 짙은, 캐스커…. 최근 서울 홍익대 앞에서 인기가 많은 싱어송라이터들이 합동 앨범을 냈다. 미발표 신곡을 뮤지션당 1곡씩 모았다. 근데 앨범 제목이 별나다. ‘그대 내게 기대(아로나민 50주년 기념음반·사진).’
일동제약이 아로나민 골드 판매 50주년을 맞아 낸 디지털 앨범이다. 젊은 소비자에게 부드럽게 다가갈 방법을 고심하던 제약회사 쪽이 달콤하고 세련된 음악을 구사하는 뮤지션이 많이 소속된 음반사 파스텔 뮤직에 손을 뻗어 성사된 프로젝트다.
제약회사와 음반사 사이의 미묘한 줄다리기도 펼쳐졌다. 제약사 쪽은 뮤지션 특유의 감성을 유지하면서도 약효를 우회적으로 강조할 수 있는 문구를 넣어 달라고 독려했다고. 음반사 관계자는 “뮤지션이 만든 가사 중 ‘덕분이야’가 경쟁사의 간 기능 개선제 광고에 나오는 ‘간 때문이야’라는 문구를 떠오르게 한다는 제약사 쪽 의견이 있어 발음이 비슷한 ‘너뿐이야’로 바꾸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제약사 측은 또 다른 사랑노래에는 ‘넌 나의 힐링 포인트’란 문장을 꼭 넣어 달라고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약과 음악의 미묘한 동거는 ‘윈윈 전략’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음악 제작비를 제약회사에서 투자하므로 뮤지션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 없이 신곡을 발표할 수 있다. 제약회사는 딱딱한 이미지를 희석하고 가수들이 보유한 팬덤에 부드럽게 호소할 수 있다. 가사는 마치 연인에게 전하는 순애보와 같다. 제품명은 등장하지 않지만 타원형의 혼합비타민제를 ‘너’에 대입해도 말이 된다.
‘숨이 차오르도록 달려 모퉁이를 돌면/어김없이 만나게 되는/비타민 같은 너’(‘스페셜 원’), ‘넌 나에게 힐링포인트… 그 손길로 시간을 되돌리는/마법 같은 것 힘을 주는 너’(‘힐링 포인트’), ‘지친 오늘을 다시 새롭게/깨어나게 해주는 그대야’(‘너뿐이야’).
이렇게 만들어진 신곡을 매체나 홈페이지의 광고에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점은 제약회사로선 이득이다. 기존에 발표된 곡을 TV CF용으로 따로 구매할 경우 많게는 수천만 원의 비용이 든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달콤한 일석이조인 셈이다.
비슷한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2011년에는 한국 노바티스가 팝 듀오 가을방학에 ‘감기약’이라는 노래의 제작을 의뢰했다. 따뜻한 물에 타서 향긋한 차로 마실 수 있는 ‘테라플루’의 특성을 뮤지션 쪽에 설명했다. 결과물은 ‘문득 잠을 깨 보니 몸이 아파/아무래도 감기인 것 같아… 네가 옆에서 챙겨준다면/금방 나을 것 같아/따뜻한 머그잔을 건네주면…’ 하는 가사로 나왔다. 음원은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한 음반사 관계자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싱어송라이터의 자존심 모두를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지만 음악이 방송이나 온라인으로 흐르면 홍보 효과도 얻을 수 있어 괜찮은 제안인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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