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 오케스트라/안나 체르빈스카 리델 글/마르타 이그네르스카 그림
이지원 옮김/36쪽·1만5000원·비룡소
최근 우리 그림책들은 길을 잃은 듯 보입니다. 아니, 아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는 격이라 할까요. 아름다운 그림들을 모아 순서대로 묶어 책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림책은 포트폴리오가 아닙니다.
처음 그림책이 만들어진 것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내용에 관계없이 궁극적으로 그림책은 글이 없이 그림만으로도 이야기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글을 배울 수 있게 된 지금, 그림책은 글을 알기 전 유아들이 처음 문학을 만날 수 있는 책이 됐습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잘 만든 그림책일수록 유아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에게도 감동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지난해 출판사 비룡소에서 나온 ‘zebra’ 시리즈는 그림책이 유아문학이면서 모든 독자를 아우르는 힘을 가졌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 시리즈는 글을 최적, 최소로 줄이고 책이 가진 물성을 최대로 끌어올린 디자인과 아름다운 그림이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책을 덮으면 영화 한 편을 본 듯 모든 감각이 살아납니다. ‘알록달록 오케스트라’는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입니다.
책을 읽었는데 음악이 들립니다. 음악을 모른다면 그것이 무엇일지 궁금한 마음이 점점 커지게 만듭니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오케스트라를 이루는 모든 악기의 특징과 소리가 귓가에 맴돌게 됩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데 급급해 섣불리 텍스트로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악기 소리를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한 방식이 충분히 감각적이고 독창적이며 풍성합니다. 시각적인 자극이 청각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완성도 높은 논픽션 그림책입니다.
글과 그림을 연결하여 소리를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안에 이야기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기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으로 그들이 속한 곳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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