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치하의 한국 레지스탕스들은 숨 막히는 긴장 속에 살면서도 명랑했다. 언제라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에 당장 삶을 버려도 아쉬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살았다. 자신의 목숨을 총과 폭탄으로 바꾸겠다고 결심한 이들은 먼저 폭탄테러에 나서겠다며 제비까지 뽑았다. 그들은 왜 이런 치열한 삶을 택했을까.
이 책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다. 개인적 영웅주의는 빼고 국내외에서 활약한 8개의 항일단체에 주목했다. 비밀 결사단체인 신민회, 대한광복회, 의열단, 조선공산당, 성진회와 독서회중앙부(광주학생항일운동의 중심단체), 조국광복회, 조선건국동맹,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그들이다.
레지스탕스 8개 단체의 형성 배경, 중심인물, 추구한 노선 등을 따라가다 보면 항일운동의 큰 흐름이 보인다. 처음에는 대한제국의 복원을 주장하는 보황(保皇)주의 성격을 띠다 공화주의로 발전한 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세력으로 나뉜다. 이념은 분화됐으나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항상 똑같았다. 조국의 자유, 그 단 하나였다. 방대한 자료 조사로 당시 활동했던 운동가의 선언문이나 연설문 등을 삽입해 ‘왜 그들이 그토록 치열한 삶을 선택했는가’를 차근차근 보여준다.
1910년 대한제국 멸망에서 1945년 광복까지 시간 순서로 정리해 항일운동은 물론이고 근현대사의 큰 그림을 읽을 수도 있다. 이토 히로부미와 안창호 선생의 대화문을 보여주거나 당시 신문 기사를 소개해 고리타분한 교과서가 될 뻔한 구성에 변화를 주었다. 8개의 장이 끝날 때마다 국내 공산주의 운동의 계보, 이승만이 상하이임시정부 대통령이 된 배경, 광복 직전 활동한 무장 독립세력 등을 정리한 부록도 볼만하다. 가벼운 인터넷 검색만으로 쉽게 알아낼 수 없는 정보들이 더해져 깊이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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