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11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라덴에 대한 미국 정보기관의 추적과정을 그린 영화 ‘제로 다크 서티’. 각본을 맡았던 마크 볼이 동명 소설을 2월에 내놓는 등 빈라덴 사살을 다룬 책 출간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나온 ‘칼의 길(The Way of the Knife)’도 그중 하나이지만 바라보는 시각이 약간 다르다. 그간 나온 책들이 대부분 정보기관의 활약상을 다뤘다면, 뉴욕타임스에서 정보기관을 담당하는 마크 마제티 기자가 쓴 이 책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국방부의 테러 정책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출간해 베스트셀러 순위에 단숨에 올랐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칼’은 CIA와 국방부를 뜻한다. 미국 정부가 이 칼을 사용하는 방법에 변화를 가한 계기는 9·11테러였다. 이전까지 미국 본토가 테러리스트의 직접 공격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이를 계기로 역할이 점점 달라져간다. 냉전시대에 공산권의 비밀정보 수집을 주로 맡았던 CIA의 역할은 테러리스트를 직접 소탕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2011년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 있던 빈라덴의 은신처를 찾아내 사살작전을 총지휘했던 곳도 국방부가 아니라 CIA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 국방부가 이런 작전을 벌이는 것이 법으로 금지돼 있어 CIA가 네이비실(해군 특수부대)의 지휘권을 떠맡았다”고 밝혔다. 이렇게 CIA는 비밀정보 수집과 군사작전을 동시에 수행하는 형태로 변모해간다. 그 과정에서 국방부는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CIA에 상당히 분노한다.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은 결국 “유일한 답은 국방부를 점점 CIA처럼 바꿔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빈라덴 사살 당시 작전에 소요된 시간은 15분. 이후 23분 동안 네이비실 요원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현장에 있던 컴퓨터에서 주요 기밀정보를 빼오는 것이었다. CIA는 이때 빼낸 정보로 알카에다의 핵심 인물인 아티야 라흐만 등을 사살하는 데 활용하게 된다. 저자는 이런 정보기관과 국방 부문의 융합이 테러리스트들의 활동을 크게 줄이는 데 기여했다고 분석한다. 2005년 영국 런던의 폭탄 테러 위협 이후 이슬람 테러조직의 활동은 급격히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당시 CIA 국장이었던 리언 패네타는 상당히 공격적인 인물이다. 그는 CIA 작전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 바로 무인항공기(드론)를 통한 표적 사살이다. 그는 파키스탄에서 최소 1196명의 군인과 민간인을 사살한 216차례의 드론 공격을 승인했다. 최근 이런 드론 공격이 정당한 것인지를 둘러싼 논란이 미국 정치권뿐만 아니라 유엔에서도 뜨겁다. 하지만 미국 정보당국으로서는 드론 공격이 저렴한 비용으로 파키스탄, 예멘, 아프가니스탄 테러집단의 맥을 끊는 데 효과적이라는 측면에서 유혹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저자는 “CIA가 지구 끝까지 쫓아서라도 작은 전쟁을 벌일 수 있는 단계까지 올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저자는 CIA가 테러 섬멸에 몰두하면서 정작 정보기관 본연의 업무인 정보 수집에서는 누수(漏水)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CIA는 튀니지와 이집트, 리비아에 불어닥친 ‘중동의 봄’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 더구나 최근 이라크와 북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연일 의회에서 난타를 당하고 있다. CIA의 이면을 들여다보려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적지 않은 흥미를 제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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