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고백부터 하자. 책 선정회의에서 이 두 권을 묶기로 한 것은 안일했다. 그저 워낙 육아에 관심 많으니 요즘 흐름이나 짚어보자는 취지였다. 어떻게 해야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그런데 막상 펼쳐본 책은 ‘판도라의 상자’였다.
일단 ‘엄마의 의욕이…’는 그럭저럭 예상을 벗어나진 않는다. 일본에서 꽤 잘나가는 자녀교육 전문가인 저자는 아빠 엄마의 과잉의욕이 아이를 어떻게 망치는지 강하게 비난한다. 자극적이지만 사실 이래야 정신 차린다. 그리고 작지만 적절한 부모의 변화가 얼마나 아이의 성장에 좋은 밑거름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조언해준다.
동의하건 안 하건 이 책은 대충 통과. 그런데 문제는 ‘서울대 엄마들’이다. 이 책, 어떤 육아 방법도 제시하지 않는다. 심지어 아이에 대한 책도 아니다. 물론 잘나디잘난 서울대 출신 엄마 24명에 대한 인터뷰 속에는 나름 느껴지는 바가 많다. 하지만 그 포커스는 바로 그 ‘엄마들’이다. 서울대를 나온 여성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하며 그 교육법을 훔쳐보고 싶은 마음이라면 당장 이 책을 덮길 바란다.
‘서울대 엄마들’은 말 그대로 엄마가 주인공이다. 저자들 역시 서울대 출신(평생 글에 이렇게 서울대를 많이 써본 적은 처음이다)인 책은 정말 담담하게 서울대를 나와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 주목한다. 그들은 우리와 뭐가 차이가 날까. 그들 역시 우리와 뭐가 닮았을까. 성질 급하게 결론부터 얘기하련다. 방식이나 상황은 약간 다를지언정 그들도 똑같은 엄마였다.
일단 선입견부터 버리자. 서울대 부모를 둔 아이들이 다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다! 아, 살짝 쾌감이 드는 이 악마 근성에 축배를. 오히려 너무 대단한 엄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자녀가 많다. 최고학력을 갖췄다고 교육법이 고차원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기준이 너무 높다보니 아이의 재능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경우가 잦았다. 게다가 적당한 속물근성과 강남 지상주의, 자녀를 통한 은근한 경쟁심리도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맞다. 서울대도 한국 땅에 있다. 그들은 2013년 동시대를 사는 ‘한국 엄마’였다.
그렇다면 왜 그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이들도 이 땅의 진흙탕 같은 교육 현실에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걸까. 사회 탓, 정부 탓, 남편 탓…. 다 맞는 말인데 뻔히 아는 건 잠시 접어두자. 의외로 이 대답은 ‘엄마의 의욕이…’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으나, 대체로 이런 고학력 부모들은 ‘고층빌딩형 지식’에는 일가견이 있다. 반에서 1등 하고, 좋은 학교로 진학하는 ‘스킬’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허나 책이 말하는 ‘들판형 지식’에는 의외로 허술한 경우가 많다. 보기엔 쓸모없어 보이는 잡학일지 몰라도 다양한 관심과 경험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
어쩌면 서울대건 아니건 이 땅의 엄마 아빠들은 여기서 아이와의 관계에 낭패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좋은 대학과 번듯한 직장만이 성공의 척도라고 믿는 사회에서, 조금 뒤처지거나 돌아가는 삶은 ‘낙오’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지진 않았는지. 자신의 아이 역시 이런 기준으로 평가 대상 채점하듯 바라본 것은 아닌지. 허구한 날 이 땅의 교육현실을 개탄하면서도, 그 레이스에서 뒤처질까봐 불안에 떨고 있는 건 바로 우리 자신들이지 않은가.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에서 온갖 것이 쏟아져도 남은 게 하나 있다. 다들 아는 ‘희망’이다. 아마 자녀가 없는 이라면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바로 이런 모순에서 우리는 아직 희망을 본다. 왜? 우리 아이니까.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니까. 부모는 그런 거다. 험한 세상의 파도를 막을 버팀목이 될 책임이 있는 한, 저 풍랑에 맞설 수밖에 없다. 다만 이젠 바깥세상만 보며 걱정하지 말고, 등을 돌려 아이들을 바라보자. 혹시 그 아이, 등 뒤에서 떨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 땅에 와준 것만으로도 기쁨이 넘쳤던 초심을 기억하자. 서울대 엄마건, 일본 엄마건 혹은 아빠건, 가족은 서로 존재하는 자체로 고마운 거다. 그리고 그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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