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취임한 박남수 천도교 교령은 보수적인 교단 내에서 세력도 없고, 심지어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창교 100년이 안 된 원불교가 교육, 문화, 의료에 걸친 사회적 기여와 엄격한 수행으로 빠르게 성장했다”며 “변화를 위해 과감하게 이웃 종교를 배우고 사회적 소통에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천도교가 3·1운동 때 큰일 했다며 얘기하는 것, 이제 그만둬야 합니다. 우리 할머니 ‘미아리 국밥집’이 최고라면서도 스테이크 먹기 바빠 제대로 알리지도 못했는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중앙총부에서 만난 박남수 천도교 교령(70)은 취임 후 첫 언론 인터뷰에서 대뜸 “교조들과 국민들께 죄송하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천도교를 대표하는 제55대 교령에 오른 그의 취임사에는 “주변에서 천도교 걱정하는 뜻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도 들어 있었다. 1860년 수운 최제우가 창도한 동학은 1905년 3대 교조 의암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로 개칭됐다. 박 교령의 인터뷰는 취임 후 처음이다.
―주변의 걱정은 무엇인가.
“천도교가 과거 위상을 못 찾고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 아니겠느냐. 천도교 잘되라고 하는 소리다.”
―어떻게 천도교를 이끌 생각인가.
“취임식에서 세 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먼저 ‘기본에 충실하겠다’고 했는데 옛날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수운-해월(최시형)-의암의 가르침과 기본 정신은 유지하되 시대에 맞는 규범과 제도를 갖추자는 것이다. 계절이 바뀌었는데 옷을 못 갈아입으면 세상에 뒤처질 뿐이다.”
―소통과 미래도 얘기했다.
“그렇다.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지경이 됐다. 이러면 으뜸이라는 ‘마루 종(宗)’을 쓸 자격이 없다. 세상과 소통해야 한다. 미래라는 화두는 희망과 삶의 진정한 가치를 제시하는 것이 돼야 한다. 가수 싸이를 비롯한 한류가 대표적인 한국문화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관용과 공존 같은 우리 종교의 정신문화야말로 세계에 알려야 할 큰 가치라고 생각한다.”
―미안한 얘기지만 동학은 알아도 천도교는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께서 생전에 ‘모두가 내 탓이오’라고 했다. 천도교에도 모든 것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는 향아설(向我設)이 있다. 모든 길흉화복과 문제가 나의 내부로부터 나온 것이다.”
―천도교의 핵심은 무엇인가.
“인내천(人乃天·사람이 곧 하늘이다)과 사인여천(事人如天·사람을 하늘처럼 섬긴다). 이보다 훌륭한 진리가 있겠나. 종교학자 누구도 천도교의 교리가 부족하다고 하지 않는다.”
그는 거침이 없고 솔직했다. 선대의 훌륭한 가르침을 제대로 전파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함께 이렇게 덧붙였다. “물고기와 물의 관계를 보자. 물고기가 스스로 숨을 쉬기 때문에 사는 것일까? 물이 없다면 물고기가 살 수 있나? 그렇다면 생명은 물고기에만 있는 게 아니라 물과 함께 있는 것이다. 바로 한울님의 기운이 있기에 모든 생명이 존재하는 것이다.”
―역사 속의 천도교는 큰 역할을 해왔다.
“천도교는 조선 후기에는 일제와 맞서고,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앞장서며 순교가 아니라 순국을 해 왔다. 갑오년(1894년)과 3·1운동 때 약 3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한때 남에 100만, 북에 200만 명의 교도가 있었지만 일제의 탄압과 분단, 서구화로 교세가 급격히 약화됐다.”
―지금 교세는 어떤가.
“20만, 30만 명을 얘기하지만 열성적인 교도는 10만 정도로 본다. 때가 있다. 해월이 이름을 최경상(崔慶翔)에서 최시형(崔時亨)으로 바꾼 것은 어떤 변화든 때(時)와 짝을 이뤄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통일된 한국에서 무엇을 갖고 살아가겠나. 서양종교? 아니다. 북한 김일성대학에서는 천도교를 민족종교로 교육하고 있다.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게 미래를 준비하면 다시 천도교의 길이 열릴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