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황제… 랩처럼 쏟아내는 대사… 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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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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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극 ‘칼리굴라 리믹스’ ★★★★

공연 도중 마이크를 내려놓고 테이블에 올라가 자신의 선악관에 대해 독설을 퍼붓는 칼리굴라. 의정부음악극축제 제공
공연 도중 마이크를 내려놓고 테이블에 올라가 자신의 선악관에 대해 독설을 퍼붓는 칼리굴라. 의정부음악극축제 제공
처음엔 너무도 낯설었다. “으악, 으악” “하악, 하악” 배우 9명이 내는 원초적 소리부터 “뚜두둑” 마이크를 치아로 긁어 뜯어내려는 소리까지. 살짝 미친 것 같은 이들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기운과 카리스마는 관객을 순식간에 압도했다.

19일까지 열리는 의정부음악극축제의 개막작으로 4, 5일 경기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공연된 음악극 ‘칼리굴라 리믹스’(마크 보프레 각색·연출)는 고대 로마의 3대 황제였던 칼리굴라를 소재로 알베르 카뮈가 쓴 희곡을 독특한 연출 스타일로 무대에 옮겼다.

사랑했던 누이 드루실라의 죽음을 겪으며 죽음에서 도피하고자 ‘살아있는 신’이 되려 했던 로마 황제 칼리굴라와 그 반대세력의 갈등을 담았다. 캐나다의 프랑스어권인 퀘벡의 극단 테르데좀이 공연하는 이 극은 무대의 삼각형 모양 테이블(디지털 콘솔) 위에 9명이 둘러앉아 주인공 칼리굴라의 지휘를 받으며 목소리와 최소한의 몸짓으로만 극을 이끌어간다.

배우들이 읊는 대사들은 때로는 랩처럼, 때로는 노래처럼 들린다. 마이크에 입을 대고 대사를 읊조리며 속삭이거나 리듬에 맞춰 모두가 긴 대사를 쉬지 않고 쏟아낼 땐 소름이 끼친다.

테이블에 앉아 목소리만 내던 배우들은 극 후반엔 마이크를 버리고 테이블 위로 올라서 직접 연기를 선보인다. 칼리굴라는 죽음에 다다르며 테이블 위에서 기어 다니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광기를 분출한다. 누이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완전한 악을 통해 선에 이르고자 하는 역설적 욕망이 폭발하는 순간이다.

추상적이고 시적인 대사들을 압축해 번역한 데다 그나마도 자막이 너무나 간단하고 빨리 지나가는 바람에 주옥같은 대사의 묘미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배우가 대사를 리드미컬하게 소화하는 능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고전적 내용을 전위적 무대연출로 표현했다는 점은 의미 있다. 대사의 어조와 리듬감으로 짜릿함을 선사하고, 9명의 목소리가 섞여 하나의 음악을 연주해내는 이 작품은 음악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칼리굴라 리믹스#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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