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한국 리얼리즘 연극을 대표하는 ‘만선’(천승세 작)이 오랜만에 무대에 올랐다. 올해 개관 25주년을 기념해 서울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페스티벌 23’의 일환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는 왠지 익숙하다. 몇십 년 만에 몰려든 부세(조기를 닮은 민어과 생선) 떼를 발견하고 빚을 청산하고 자기 배를 마련할 꿈에 부풀었던 어부 곰치와 그 부인 구포댁이 돈벌이에 눈이 먼 선주의 횡포와 운명의 장난에 걸려 파멸한다는 내용이다.
1964년 국립극장 현상공모 당선작인 이 작품을 새롭게 공연하는 데 있어서 주목할 점은 뭘까. 이 작품의 연출을 맡기로 했다가 지난해 말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진 신호 씨를 대신해 연출을 맡은 김종석 씨는 ‘현대적 고전’의 가능성을 찾으려 한다.
극의 무대는 파도치는 바다 한복판이 아니다. 허름한 어촌에 평상 하나 덩그러니 놓인 곰치와 구포댁의 집이다. 하지만 무대는 거대한 어선의 갑판, 그것도 파도에 휩쓸려 난파 직전의 갑판을 연상시키는 시각적 위용을 과시하며 작품의 상징적 의미를 세련되게 구현한다.
여기에 배우들의 개성 만점 연기가 감칠맛을 더한다. 20년 가까이 ‘고도를 기다리며’의 블라디미르 역을 연기해온 합리적인 한명구(곰치)와 어떤 사투리도 구성지게 풀어내는 해학적인 황영희(구포댁)를 쌍돛대로 삼고, 임형택 이기봉 같은 중견배우와 최규하 최지훈 같은 젊은 배우의 연기를 순풍 삼아 50년 세월을 둥실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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