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으나 맏형의 과거시험 부정과 역적모의에 연루되며 출사길이 막혔던 표암 강세황(1713∼1791). 그는 처가가 있는 경기 안산에서 농사를 짓다 60세에 처음 벼슬길에 나서기 전까지 주류에서 밀려났던 쓸쓸한 심경을 화폭에 담았다.
조선 후기 ‘남종문인화’의 대가 표암 강세황의 탄생 300주년을 맞아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이 ‘표암과 조선남종화파’전을 12일부터 26일까지 연다. 표암을 중심으로 원교 이광사(1705∼1777), 현재 심사정(1707∼1769), 호생관 최북(1712∼1786), 단원 김홍도(1745∼1806), 긍재 김득신(1754∼1822)을 비롯한 20명의 작품 70여 점을 공개한다. 무료. 02-762-0442
표암은 시와 글씨, 그림에 모두 능해 ‘삼절(三絶)’로 불렸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예조참판을 지낸 명문가 출신임에도 사대부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웠다. 중인 출신인 단원 김홍도의 진가를 알아보고 그의 정신적 스승이 됐다. 성리학을 기반으로 진경산수가 꽃피울 때 현재 심사정에 이어 명나라에서 완성된 남종문인화를 받아들였다. 호기심이 많았던 표암은 60세인 1773년 영조의 특명으로 관직에 진출한 이후에도 청나라의 문화를 활발히 받아들이려 했다.
표암의 작품에는 쓸쓸한 기운이 감돈다. 뜻을 펼치지 못했던 젊은 날,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의 심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실적인 묘사가 특징인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와 달리 묘사가 화려하지 않고 간결하고 담백하다. 이는 중국 명대의 남종문인화를 계승한 조선남종화의 대표적인 특징이 됐다. 표암의 작품 가운데 조선남종화풍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소림묘옥(疏林(류,묘)屋)’은 간결한 묘사와 강한 필선이 특징이다. ‘물외한거(物外閑居)’를 보면 중국 그림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표암의 기법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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