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한 아들을 발견한 아버지. 아들은 황급히 도망가고 아버지는 행여 놓칠까 뜀박질을 한다. ‘기적소리조차 검은’ 서울역 근처 남영동 골목을 돌고 도는 부자의 필사적인 달리기 한판. 30여 년이 흐름 지금. 한 출판사 건물 안에 아버지는 2층에서, 아들은 3층에서 나란히 일한다. 그때 아버지가 아들을 잡지 못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이달에 만나는 시’ 5월 추천작으로 김종해 시인(72·사진)의 ‘아버지와 아들’을 선정했다. 올해로 시력(詩歷) 50년을 맞은 시인이 지난달 펴낸 열 번째 시집 ‘눈송이는 나의 각을 지운다’(문학세계사)에 수록됐다.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 시인이 추천에 참여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시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김종해 시인, 아들은 김요일 시인(48). 시인을 아버지로 둔 아들은 음악에 빠져 고교 1학년 때 DJ를 하며 독립을 선언한다. 한 달 만에 찾은 아들의 모습은 의외였지만 아버지는 “너무 삐뚤어진 모습은 아니었다”며 웃었다. 5월은 가정의 달. 가정마다 이제는 웃고 넘길 만한 아련한 추억들이 있을 터.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해보면 어떨까.
이건청 시인은 “체험과 정서와 정신이 면밀하게 결합돼 이뤄낸 곡진한 시편들을 싣고 있다. 긴장과 투시력으로 원숙, 혼융의 세계를 불러낸 시인의 노고가 느껍기 그지없다”며 추천했다. “생의 남은 날들은 살아온 날들에 대한 헌사가 될 것이다. 칠순 시인의 새 시집은 무엇보다도 죽음과 죽은 자들에 대한 회고가 담담하다. 이 담담함 속에 노경(老境)의 감회들이 녹아든다.” 장석주 시인의 추천평이다. 손택수 시인은 “시력 50년! 노을처럼 아름다운 음악도 없다. 그렇다면 이 노을은 저녁노을이 아니라 아침노을이라고 불러야 하리라”라고 했다.
김요일 시인은 김영승 시인의 시집 ‘흐린 날 미사일’(나남)을 추천하며 “인간이 겨우 견디며 서 있는 이 땅에서 ‘찬란하고 장엄하고 허무한/盲目的(맹목적) 生의 意志(의지)의 大전환’을 보여준다. 김영승 시인의 풍자와 사유는 김수영보다 깊고 마음의 결은 천상병보다 투명하다”고 평했다.
이원 시인은 오은 시인의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문학동네)를 추천했다. “시단의 래퍼 오은이 더 펀펀(fun/pun)해진 사회학을 들고 돌아왔다. 고소한 오렌지 타입, 오은의 ‘쥐락펴락’ 랩은 역시 현실보다 한 수 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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