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는 동-서양화의 거목… 작고 작가 기리는 두 전시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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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운상展… 현대 미인도 개척 ‘20세기 신윤복’
김영주展… 인간의 본질 캔 ‘캔버스 인문학자’

동양화가 목불 장운상의 예술세계를 조명한 ‘절대미를 꿈꾸다’전에 나온 ‘여인도’(1977년). 그는 전통과 현대적 감성이 결합한 미인도의 대가이면서 동양화 누드의 효시로 꼽힌다.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제공
동양화가 목불 장운상의 예술세계를 조명한 ‘절대미를 꿈꾸다’전에 나온 ‘여인도’(1977년). 그는 전통과 현대적 감성이 결합한 미인도의 대가이면서 동양화 누드의 효시로 꼽힌다.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제공
9일 오후 ‘절대미를 꿈꾸다: 목불 장운상의 예술세계’전이 열리는 경기 이천시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원로 섬유예술가 이신자 씨(83·예술원 부회장)는 벽면을 채운 ‘미인도’를 차분히 둘러본 뒤 상반신을 노출한 여인의 초상 앞에 발길을 멈췄다. “동양화로 누드를 그린 것은 사상 처음이었다. 서울대 선후배로 만나 55년 결혼했는데 신혼 초기 작품을 다시 보니 감회가 깊다. 곱게만 그리지 말고 강한 여성을 그려보라고 옆에서 잔소리도 많이 했는데….”

한국화 전시에 주력해온 월전미술관이 동양화가 목불 장운상(1926∼1982)의 전시를 마련했다. 수묵인물화를 통해 동양화의 전통을 지키려 했던 화가의 여정을 작고 이후 31년 만에 처음으로 되짚는 자리다. 추상적 표현 등 한국화의 실험이 활발했던 시절에 맥이 끊기다시피 한 미인도를 현대에 되살린 작품 등 70점을 선보였다. 6월 23일까지. 1000∼2000원. 031-637-0033

광복 이후 척박한 환경에서 창작과 평론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음에도 박수근 이중섭 등 동세대 작가에 비해 미술계의 관심에서 멀어진 서양화가 김영주(1920∼1995). 그의 빼어난 작품들을 다시 만날 기회도 생겼다. 권상능 조선화랑 대표(79)가 기획한 ‘김영주 재조명’전. 대작 중심의 1부(8∼13일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미술관)에 이어 15일∼6월 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컨벤션센터 2층 조선화랑으로 2부 전시가 이어진다. 무료. 02-6000-5880

두 전시는 세월의 흐름 속에 희미해져가는 작고 작가들의 궤적을 호명하는 전시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극소수 인기작가를 제외하면 근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선구자들의 발자취는 너무 쉽게 잊혀져 간다. 시대의 유행과 거리가 멀어서, 미술시장의 관심권 밖이란 이유로 홀대받는 작가들에 대한 재조명이 더 활발해져야 할 이유다.

○ 20세기 ‘미인도’를 개척하다

“아름다운 미인의 얼굴보다 우리를 즐겁게, 흐뭇하게 해주는 것은 없다.” 자신의 말대로 목불은 평생 아름다운 여인을 즐겨 그렸던 ‘미인도’의 대가였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에 뿌리를 두고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형의 여인을 묘사한 작품들은 ‘성형 공화국’으로 불리는 오늘날 미의 기준이 과거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여준다.

전시장에는 스승이었던 월전 장우성의 수묵인물화를 계승하면서도 도회적 감성을 접목한 ‘미인도’들이 반겨준다. 한복에 현대적 헤어스타일을 한 여인이 있는가 하면, 8등신에 가까운 몸 비례에 테니스 채를 든 여인도 보인다. 섬유예술가 아내(이신자 씨)와 영향을 주고받은 듯 그림의 배경에 디자인 감각을 살린 작품도 있다. 극단적 실험보다 ‘(그림은) 보고 즐거워야 한다’는 화가의 지론을 담은 ‘미인도’는 생전에 화려한 명성을 누렸으나 타계 후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가 없었다.

○ 인간과 그 본질을 탐구하다

인간을 주제로 일관된 작업을 해온 김영주 재조명전에 나온 ‘신화시대-춤’(1986년). 자유분방한 그라피티 형식이 눈길을 끈다. 조선화랑 제공
인간을 주제로 일관된 작업을 해온 김영주 재조명전에 나온 ‘신화시대-춤’(1986년). 자유분방한 그라피티 형식이 눈길을 끈다. 조선화랑 제공
김영주 재조명전의 1부에선 가로 10m가 넘는 ‘신화시대’ 시리즈 미공개작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시에선 1950년대 중반에서 만년까지 ‘인간’과 그 본질에 대한 관심을 끈덕지게 탐구한 화가의 대표작, 드로잉, 콜라주 등을 선보였다. 자유분방한 색채와 표현으로 사람의 형상과 기호, 글자로 채운 그의 작품들은 생명력과 생동감이 흘러넘친다.

권상능 대표는 “미술시장의 외형적 성장과 더불어 지나친 상업주의와 이기주의에 가려 정당한 대접을 받아야 할 작가들이 오히려 가려지고 도태된 측면을 낳은 것은 우리 문화의 큰 손실”이라고 아쉬워했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장운상#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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