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 전문가 100인이 뽑은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 20’에는 업무용 시설 5개가 포함돼 있다. 공간사옥(1위) 스페이스닷원(8위) 웰콤시티(10위) 삼일빌딩(12위) 어반하이브(13위)다. 이 중 삼일빌딩과 어반하이브는 ‘좋은 빌딩’의 전형을 보여준다. 1세대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종로구 관철동 삼일빌딩(1970년)은 “1960년대까지의 근린상업시설 수준에서 진일보해 고층 오피스의 시대를 열었다”(조재모 경북대 교수)는 평가를 받았다. 여의도 63빌딩(1985년)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국내 최고(最高) 빌딩이었다. 건축가 김인철이 벌집 모양으로 디자인한 강남구 논현동 어반하이브(2008년)는 2009년 서울시 건축대상작이다. “과감하고 절제된 건축조형의 순수성을 통해 과시적인 고층건물 위주의 주변 맥락과 차별화했다”(김주원 홍대 교수)는 평가가 나왔다. 》
옛 화신백화점 자리에 들어선 서울 종로타워는 괴물이다. 한국 최대의 자본권력이 당시 최고로 잘나가는 외국의 건축가에게 최고의 설계비를 지불한 이 건축물은 최악의 현대건축 3위를 기록했다.
같은 종로에 있는 삼일빌딩은 1970년대 청계천 위로 날렵하게 솟아오르던 삼일, 청계고가와 함께 근대 조국 발전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건축가 김중업은 삼일빌딩의 설계비도 받지 못하고 엄청난 빚에 떠밀려 프랑스로 도망치듯 떠났다고 한다. 그런 빌딩이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물 중 하나로 꼽혔다.
삼일빌딩은 짝이 되었던 삼일, 청계고가를 잃고 어설프게 복원된 청계천의 한 옆에 초로의 노인처럼 서 있다. 그 모습은 ‘위용’보다는 ‘자태’라는 말이 적합할 듯하다. 단순한 반복의 미학, 폭과 높이의 적절한 비례감, 올바른 재료의 선택 등이 그 자태를 이룬다. ‘31층의 높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보를 뚫고 닥트를 배열하여 날씬하게 보이려고 무진 애를 썼다’는 김중업의 언급에서 알 수 있듯 가상한 노력과 고민이 배어 있는 건물이다. 지은 지 40년이 넘어서인지 모든 것이 노후화했지만 그 우아한 자태만큼은 여전하다.
어반하이브. 서울 강남 교보타워의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 ‘빵빵이’ 빌딩으로 불리는 건물이다. 교보타워가 먼저 생겼고 인지도가 높은 이유로 그곳은 교보생명 사거리로 불린다.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세계적인 수준의 설계비를 받고 디자인한 교보타워는 붉은 벽돌의 거대하고 견고한 덩어리로 버티고 있는 반면, 어반하이브는 그 특이한 구조적 접근법으로 인한 개성 있는 모습으로 모퉁이를 지키고 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어반하이브의 외관은 그저 튀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건물을 지탱해주는 구조적 역할을 담당해 형태에 진정성을 더해준다. 배타적이고 방어적인 모습으로 거대 자본의 공룡성을 보여주는 것이 교보타워라면 어반하이브는 ‘콘셉트’ 있는 접근으로 영리하게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어반하이브는 한국 최고의 현대 건축물로 평가받은 반면 교보타워는 목록에 오르지 못했다.
외국 스타 건축가와 국내 건축가를 비교하여 우열을 가리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도달점은 아니다. 단지 최고 건축의 반열에 오른 건물과 훨씬 더 많은 자본의 혜택을 입었으나 그렇지 못한 건물 사이에 존재하는 질적 간극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를 묻고 싶을 뿐이다.
업무시설은 규모가 크고 상업지구에 있으며 블록의 모퉁이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도시 경관의 가장 표상적이고 중요한 몫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한 시대의 건축적 아이콘이 되는 건물들 중에 업무시설이 많은 이유도, 업무시설이 욕망과 허영의 덩어리가 될 확률이 높은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주변 건물보다 돋보이고자 하는 욕망을 탓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허영으로 화장하는 순간 모두에게 비극이 된다. 건물은 시각적 공유물이니까. 특히 사옥의 용도로 설계될 때 한 회사의 정체성을 건물에 투사하고자 하기 때문에 튀려는 욕망이 커지기 쉽다.
삼일빌딩이 우리에게 소중한 이유는 튀지 않는 단아한 모습으로도 존재가 충분히 각인될 수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업무시설의 현대적 원형으로 뉴욕의 시그램 빌딩을 꼽는데 삼일빌딩은 그 원형을 충실히 서울에 이식시켰다. 혹자는 표절을 거론하기도 하지만 삼일빌딩은 시그램 빌딩의 외관을 베낀 것이 아니다. ‘도시와 관계를 맺는 형식에 천착한다’는 시그램 빌딩의 윤리를 존중하고 실행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삼일빌딩과 한 세대의 시간차를 두고 세워진 어반하이브는 고층 업무시설로서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튀려는 자본의 욕망과 윤리적이려는 건축가의 의지가 몇 가지 현명한 건축적 장치에 의해 절묘하게 한 몸이 된 듯하다. 현대 사회에서 튀려는 욕망을 억누르기만 할 수는 없는 법, 그 시대의 욕망을 영리하게 표출하는 지혜 또한 한 세대 이전과는 다른 윤리 아닐까.
삼일빌딩은 리모델링이 필요해 보인다. 리모델링이 삼일빌딩의 모습을 훼손하지 않기를 바란다. 서소문에 붉은색 커튼월로 단아하게 자리 잡고 있던 옛 효성빌딩이 하루아침에 리모델링의 이름하에 무참히 짓밟힌 것을 잊지 않는다. 시그램 빌딩의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의 제자 김종성이 설계한 건물이었다.
손진 이손건축사사무소 소장
[바로잡습니다]
◇15일자 A22면 ‘한국의 현대건축 BEST&WORST <7> 좋은 빌딩 전형을 보여주는 12위
삼일빌딩, 13위 어반하이브’ 기사에서 삼일빌딩을 설계한 건축가 고 김중업 씨의 사진 대신 건축가 고 김수근 씨의 사진이
게재됐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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