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MCM의 새 디자인 수장으로 임명된 에이드리언 마젤리스트는 7일(현지 시간) 오후 열린 MCM의 스위스 취리히 매장 오프닝 기념식에 말쑥한 슈트 차림으로 등장했다. 이에 앞서 열린 인터뷰 때는 스트리트 패션을 옮겨온 듯한 캐주얼 차림이었다. 본인 스스로도 캐주얼과 포멀을 넘나드는 멋쟁이인 듯 했다. MCM 제공
에이드리언 조제프 마젤리스트(38). 성주그룹이 인수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MCM의 새 디자인 수장인 그는 ‘부드러운 남자’였다. 콧수염 때문에 마초적으로 느껴졌던 첫인상과 달리 겸손하고 다정한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MCM이 7일 스위스 취리히 중심부 뮌스터호프 거리에 개장한 플래그십스토어. 500년 된 랜드마크 건물 1층에 둥지를 텄다.마젤리스트는 2010년까지 약 2년간 MCM에서 글로벌 아티스트 디렉터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이 인연으로 한국에 자주 드나들고 한국인과 자주 접촉해서인지 동양식 예절에도 익숙한 듯했다. 그는 기자와 악수를 하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안녕하세요” “여보세요” 등 간단한 한국어 인사말을 제법 유창한 발음으로 건넸다.
MCM은 패션 라인을 강화하고 브랜드에 보다 젊은 이미지를 불어넣기 위해 1월, 마젤리스트를 다시 한 번 불러들였다. 이번에는 그를 위해 새로운 직책(치프 크리에이티브 오피서·CCO)까지 만들었다. A스타일이 7일(현지 시간) 스위스 취리히의 MCM 단독매장 오픈을 앞두고 그를 만나봤다.
취리히의 패션피플의 이목을 끌기 위해 핸드백 및 패션 아이템을 강화해 선보인 MCM의 취리히 플래그십스토어 내부.머천다이징부터 광고까지 비주얼 총괄
―MCM으로 컴백한 소감이 어떤가요. CCO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저는 과거 MCM이 럭셔리 브랜드로 포지셔닝하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 지난해 말 ‘MCM으로 돌아오라’는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정말 영광스러웠죠. CCO는 제품 디자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머천다이징부터 콘셉트, 광고에 이르는 모든 비주얼을 총괄하는 역할을 합니다. MCM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저도 흥분됩니다.”
―스위스 취리히 인근이 고향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MCM이 취리히에 새로운 유럽 매장을 낸다고 했을 때, ‘취리히와 패션이 어떤 연관성이 있기에…’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취리히는 60∼70년 전만 해도 실크 공장이 몰려 있는 곳이었어요. 레이스를 전문으로 만드는 공방도 많았으니 패션 DNA가 강한 곳이죠. 지금은 이런 공장이 다 사라지고 하나도 남지 않아 아쉬워요. 아무튼 저도 이 인근 지역 출신이라 그런지 직물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어요. ‘패브릭 프런트라인’이라는 회사에 들어가 샤넬, 지방시 등 고급 브랜드의 패션쇼를 위한 직물 디자인을 한 경험도 있어요.”
―취리히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고 이탈리아 밀라노의 명문 디자인스쿨 ‘마랑고니’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패션과는 어떻게 인연을 쌓게 되셨는지요.
“전 사실 ‘마운틴 보이’예요. 알프스 산골 출신이죠. 저희 부모님은 노동자 계층 출신이라 집안이 부유하지도, 패션과 연관된 일을 하는 가족이 있지도 않았어요. 열여섯 살 때 마치 갑자기 섬광처럼 패션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부모님께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하니 무슨 직업인지 잘 모르시더라고요.(웃음) 열두 살 더 많은 형이 ‘너의 꿈을 밀어주겠다’며 학비를 대줬죠. 형과 우애가 좋은 편이에요. 지금까지 제가 거둔 성공을 가장 뿌듯해하는 것도 형이고요.”
―디자인에 재능이 있었군요.
“패션 매체를 접할 기회도, 디자이너를 만날 기회도 없었지만 항상 창의적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아요. 열 살 때 집에다 그라피티 같은 걸 하기도 했으니까요.”
2014년 봄여름 시즌부터 선보여
―MCM을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 나갈 예정이신지요.
“MCM이 1976년 독일 뮌헨에서 탄생해 유럽에서 한창 인기를 얻을 당시에는 패셔너블하고 대담한 느낌의 브랜드로 인식됐어요. 지금은 클래식한 느낌이 더 강하죠? 저는 MCM을 세련되면서도 대담한 브랜드로 만들고 싶어요.”
마젤리스트는 2014년 봄여름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MCM의 새 디자인을 선보이게 된다. 그는 “로고를 새롭게 창조한 디자인과 최고급 가죽을 활용한 라인을 선보이는 등 기존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방향으로 혁신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과거 2년간 MCM에서 일하면서 아시아 진출 전략을 짜는 데 힘을 보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최근 MCM이 일궈낸 성과에 대해 평가한다면….
“특히 아시아 국가의 공항에서 MCM 매장이 사람들로 붐비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정말 좋아요. 아시아에서 좀 더 기반을 닦은 뒤 다른 지역으로도 이 성공스토리를 이어가야죠.”
그는 경영이나 숫자에는 관심이 적어 보이는 다른 브랜드 디자이너들과 달리 비즈니스 마인드가 강한 느낌이었다. 이런 점은 실제로 전략적인 디자이너로서의 그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로 꼽힌다.
―MCM의 현재 남성 제품 비율은 15% 정도인데 조만간 남성 라인을 크게 확대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여성 시장에 비해 남성 시장이 성장할 여지가 더 많은 건 사실입니다. MCM은 백팩과 활기찬 이미지로 알려진 브랜드이기에 남성 관련 라인을 확장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샤넬 같은 경우 무척 좋은 브랜드이긴 하지만, 여성스러운 이미지가 지나치게 강한 탓에 남성 제품과의 연관성을 찾기는 어렵지 않겠어요?”
상하이서 한국의 역동성 느껴져
비비안 웨스트우드, 에스프리 등 럭셔리와 대중 브랜드를 오가며 다양한 경험을 쌓은 그는 MCM에 다시 합류하기 직전, 스위스 프리미엄 슈즈 브랜드에서도 일했다. 이런 경험 덕에 MCM이 성주그룹에 인수되기 전의 모습처럼, 좀 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대될 것인지 궁금해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인수 이후 보다 수익성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 핸드백을 위주로 한 제품 라인업이 완성된 것 같은데, 향후 제품 라인이 보다 확대될 가능성이 있나요.
“맞아요. 당장은 주력 제품에 집중하고 있지만 슈즈 컬렉션이나 의류에서 조만간 라인이 더 늘어날 겁니다. 좀 더 브랜드 이미지가 강하게 인지되면 라이선스를 통해 진행할 수 있는 향수 등의 사업 기회가 쉽게 찾아오겠죠.”
그는 특히 신발 디자인에 열정을 갖고 있어 자신이 신는 모든 신발을 직접 디자인한다고 했다. 인터뷰 때 신었던 멋진 갈색 구두도 그가 직접 제작한 것이었다.
―한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좋아하는 한국 문화가 있다면….
“한국은 한 60번쯤 방문한 것 같아요. 한국은 갈 때마다 변화가 빨라 놀랍죠. 요즘은 상하이에서 이런 빠른 변화 속도를 느껴요. 2014년까진 중국 시장에 집중하고, 2015년부터는 미국 시장을 공략할 텐데 한국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체질을 다진 게 도움이 되겠죠.”
그는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 4개 언어 이상을 구사할 수 있다고 했다. 인터뷰 때도 거의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자 그가 고개를 숙이며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함께 사진 촬영을 해 달라고 요청할 때도 조신하게 두 손을 모으는 포즈를 취했다. 가족 얘기를 많이 하지 않는 보통 서양인들과 달리 여섯 살배기 아들이나 형님에 대한 이야기도 신나게 들려줬다. 한국 기업이 이끄는 독일 브랜드와 스위스 디자이너가 이미 서로에게 적응해 가고 있는 느낌이랄까? 동서양의 ‘궁합’이 어떤 해피엔딩을 빚을지, 그 미래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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