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에 참여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루터 칼뱅 츠빙글리 등 남성들의 이야기(history)로 넘쳐나는 16세기 종교개혁사의 기록에서 거의 무시되고 망각된 여성들의 이야기(herstory)를 발굴했다. 종교개혁 때까지만 해도 그리스도교의 전통에 성직자의 아내라는 것은 없었다. 사도 바울 이래 가톨릭 교부와 신부들은 모두 독신이었다. 수녀에서 루터의 아내가 된 카타리나 폰 보라는 성직자의 아내이자 자녀들의 어머니라는 전에 없던 새로운 상을 세웠다.
브란덴부르크 선거후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폰 브란덴부르크와 브라운슈바이크 귀족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폰 브라운슈바이크, 모녀관계인 두 여성은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은 아내들이었다. 그들은 개인적인 큰 희생을 치르면서 종교개혁을 받아들였으며 각자의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들의 영토인 브란덴부르크와 브라운슈바이크에서 신앙의 합법화를 이뤄냈다.
칼뱅의 도시인 제네바 여성 마리 당티에르는 최초의 페미니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칼뱅은 처음으로 여성들의 설교를 인정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런 칼뱅도 마리가 선술집과 길거리에서 공개적인 설교를 하는 데는 분노했다. 그러나 마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교회 내의 여성 차별적 태도와 싸우고 여성 해방을 위한 성서적 기초를 쌓았다.
이탈리아의 올림피아 풀비아 모라타는 페라라 궁전의 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고전학자로 교육받았고 나중에 종교개혁의 이념에 공감한 성서적 인문주의자였다. 그녀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연애결혼을 택했고 탁월한 능력으로 남성들에게만 열려 있는 학문의 장에 들어섰다. 오늘날 하이델베르크에 그녀를 기념하는 ‘올림피아 모라타 프로그램’이 있다.
종교개혁이 20세기와 같은 의미의 페미니즘의 길을 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르주아 가정의 현모양처라는 상을 수립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여성들을 더 옥죄기도 했다. 그러나 수세기에 걸친 장기적 시각에서 보면 종교개혁은 그 주된 이념인 ‘만인사제주의’가 그 안에 여성을 포함시키는 것으로 해석됨으로써 오늘날 여성 해방의 길을 여는 단초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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